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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웬 발레파킹

중앙일보

입력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사는 강모씨(37). 외국계 컨설팅회사 임원인 강씨는 요즘 아파트‘주차전쟁’에서 해방돼 여간 홀가분하지 않다고 자랑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3열 주차가 ‘기본’일 정도로 극심한 주차난을 겪고 있는 단지. 퇴근시간 이후엔 주차공간을 찾느라 단지를 빙빙 도는 차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어떻게 강씨가 주차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20일 저녁. 강씨는 자기 집 앞에 서 있는 경비원 근처에 차를 정차시키고 차키를 경비원에게 맡긴다. 차키를 받아든 경비원은 차에 올라타고 강씨는 집으로 향한다. 호텔이나 유명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는 발레파킹(valet parkingㆍ음식점, 호텔 따위의 주차장에서 주차 요원이 손님의 차를 대신 주차하여 주는 일)과 비슷한 형태다.

바로 경비원이 발레파킹 요원이 돼 강씨의 차를 적당한 곳에 주차하는 것이다. 강씨는 “2교대로 근무하는 경비원 아저씨 2명에게 때때로 ‘담뱃값’을 쥐여주고 발레파킹을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곳에서는 이런 식으로 발레파킹을 부탁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파트 발레파킹 유행처럼 번질수도

서울 강남권이나 여의도,목동 등 인기지역으로 꼽히는 곳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선 날이 갈수록 주차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주차장 면적은 뻔한데 한집에 차 두 대는 ‘기본’이고 심지어 식구 수대로 차를 보유한 집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단지에선 퇴근 시간 이후 단지 전체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기도 한다. 사람 하나 지나갈 자리 없이 빽빽이 주차돼 어떻게 아침에 차를 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런 주차난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주차장 면적을 늘리려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데 재건축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 때문에 어렵고 리모델링도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의도에 사는 김모씨(38)는 “인기지역 노후단지에서 아파트 경비원이 발레파킹 주차요원으로 대거 변신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며 “경비원이 본연의 업무보다 다른 일에 신경 쓰는 게 보기 좋은 건 아니지만 입주민들이 원하고 경비원도 과외수입을 올릴 수 있다면 서로 ‘윈윈’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조인스랜드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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