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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 벼룩시장' 추억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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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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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애환과 향수가 배어 있는 '황학동 노상 벼룩시장'이 30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청계천 복원공사를 진행 중인 서울시가 인도폭 축소(5→3m) 공사를 위해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철거반원 3천5백여명을 투입, 노점상들을 강제 철거했기 때문이다. 일요일마다 5만여명이 찾던 벼룩시장엔 서울시가 굴착기로 파헤친 보도블록만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삼일아파트 뒤편의 입주 상인들도 "이젠 황학동도 끝장"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청계 7~8가의 황학동에 벼룩시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 당시 청계 3, 4가에 있던 고물상들이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황학동으로 옮겨 터를 잡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전국의 중고품이 황학동으로 몰려들면서 명소로 떠올랐다. 벼룩시장이란 이름은 '중고 옷에서 벼룩이 톡톡 튀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한편 이날 노점상 철거는 오전 7시30분에 시작해 5시간여 만에 마무리됐다. 서울시는 지게차.덤프트럭.대형 굴착기 등을 동원해 청계 2~9가의 노점 6백여개를 모두 철거했다.

노점상 2백50여명은 청평화시장 앞 네거리에서 쓰레기.폐타이어 등으로 새벽부터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을 지르고 돌과 소주병을 던지며 저항했으나 철거반원들이 오전 11시쯤 밀고 들어가 20여분 만에 해산시켰다. 행인들이 철거 과정에서 떨어진 시계.신발 등을 주워가는 바람에 이를 저지하는 노점상들과 소란을 빚기도 했다.

한편 철거반원으로 참여한 일용직 노동자 2천여명 중 5백여명은 약속한 일당을 지급하라며 오후 3시부터 3시간여 동안 청계7가 청평화시장 앞 4차로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용역업체에서 철거를 도우면 12시간에 7만원을 주기로 약속했는데 상황이 끝났음에도 약속한 일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거칠게 항의했다. 이들은 오후 6시30분쯤 용역업체에서 임금을 모두 지급하고 나서야 해산했다.

양영유.임미진.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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