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리 시원하고 달콤한 맛으로 이름났던 서울의 명물「먹골배」가 도시개발에 밀려 사라진다.
서울 신내동 일대가 택지개발지구로 확정되면서 신내동 봉화산 기슭에서 명맥을 이어온 7만8천여 평의 먹골 배 밭이 아파트단지로 둔갑,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신내·태릉·중화·상계지역은 예부 터 이름난 경기북부의 배 산지였다.
「먹골 배」란 상품명은 생산지가 배 밭이 밀집해 있던 묵동(먹골)임을 알리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이 지역 일대는 해마다 봄이면 활짝 망울을 터뜨린 하얀 배꽃이 들판을 수놓았고 가을이면 가지마다 영글어 가는 풍요로운 결실이 사람들의 입맛을 다시게 했다.
그러나 서울 북부지역개발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태릉·상계·중화 동 지역 배 밭은 택지·공장부지로 탈바꿈했고 봉화산기슭 배 밭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해 왔었다.
신내 지역은 지난3일 건설부로부터 택지개발지구 승인을 받아 경계측량과 토지감정평가가 실시되고 있어 금년 말부터 개발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곳에서 배 농사를 짓던 57가구의 농민은 올해 마지막으로「먹골 배」수확을 하게 됐다.
54년 동안 묵 동에서 배 농사를 지어 온 최흥렬씨는『수령이 33년이나 된 배나무를 없애자니 마치 자식을 잃는 심정』이라며『경기도 일부지역에 남아 있는 배 밭이라도 계속 보존해 먹골 배의 명맥을 이어갔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먹골 배의 맛이 유달리 시원하고 달콤한 것은 이 지역 토질이 비옥하기 때문.
일제 때부터 서울 용산 일본군 총사령부에서 나오는 군마의 말똥과 수인동 도살장의 쇠똥 등으로 퇴비를 만들어 뿌리며「땅심」을 다져 왔기 때문에 배 맛이 뛰어나다는 것이 농민들의 설명이다.
과질이 단단하고 수분·당분이 풍부해 출하기가 되면 상인들이 몰려와「입도선매」조건을 제시하며 수매쟁탈전을 벌인다.
봉화 산 먹골 배 밭은 고향을 떠나 삭막한 도시생활을 하는 서울시민들에게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주말나들이 명소」로서의 역할도 수행해 왔다.
회사원 황낙준씨(36)는『주말이면 가족들과 나들이 겸 배 밭에 놀러 와 값싸고 맛있는 배 맛을 보며 즐겼던 기억이 새롭다』며『서울토박이 먹골 배가 도시개발에 밀려 자취를 감추어 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유광종 기자>유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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