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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얄이 넘어야 할 편견의 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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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처음 정계에 진출하는 데는 여자라는 조건이 되레 유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올라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대권(大權)을 노리는 단계에 가면 여성이라는 조건은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여성 의원 비율이 40%를 넘는 북유럽 같은 곳이 아니라면 여성에 대한 편견의 벽은 어디서나 여전히 높다.

두 달 후 있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사회당(PS) 최초의 여성 후보인 세골렌 루아얄이 고전하고 있다. 집권 우파인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8~10%포인트로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지는 추세다.

루아얄의 도전이 실패로 끝난다면 이미지 탓이 크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여전히 남성 중심적 사고에 젖어 있는 프랑스 남자들에게 루아얄은 무엇보다 섹시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성적 매력에 가려 콘텐트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능력이란 측면을 아예 도외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성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성적 매력을 갖춘 여성이 정치 권력까지 갖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프랑스 여성 유권자들은 루아얄보다 사르코지를 더 지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프랑스의 한 주간지에 비키니 차림의 루아얄 사진이 실렸다.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는 의미의 "앵페카블(impeccable)!"이란 감탄사와 함께 "누가 이걸 아이를 넷씩이나 낳은 쉰세 살 여인의 몸매라고 하겠는가?"라는 도발적 제목이 붙었다.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바캉스를 즐기고 있는 장면을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이었다.

루아얄은 펄펄 뛰어야 했다. 사생활 침해로 고소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슬그머니 없던 일로 넘어갔다. 그러자 서로 짜고 연출한 사진이란 소문까지 나돌았다. 루아얄은 프랑스 남자들이 선정한 10대 '섹시걸' 6위에 올랐다. 프랑스 남성들에게 그는 유능한 정치인보다는 섹시한 여성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앙겔라 메르켈이나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 미첼 바첼레트도 다 50대 초반에 대권을 잡았다. 루아얄은 이들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 둘 다 중성적인 이미지다. 남자들에게는 믿을 수 있는 누나 같은 이미지를, 여성들에게는 유능할 뿐 성적으로 경쟁 상대는 아니라는 이미지를 심어 줬다. 하지만 루아얄은 자신의 섹시한 이미지를 선거에 이용하려 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프랑스 TF1 텔레비전이 대권 주자별로 돌아가면서 진행하고 있는 '질문 있습니다' 프로그램에 최근 출연한 루아얄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려고 애썼다. 수수하면서 푸근한 이미지였다. 침착하고 조리 있는 화술도 돋보였다. 프랑스 사회가 처한 위기를 과연 여성이 극복해 낼 수 있겠느냐는 여성 출연자의 질문에 루아얄은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라면 그냥 넘어갔을 문제까지 다 시비에 휘말렸다"고 여성 후보로서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하지만 나는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프랑스의 여성 의원 비율(12.2%.86위)은 한국(13.4%.79위)보다도 낮다. 루아얄 자신은 프랑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준비가 돼 있는지 몰라도 프랑스 유권자들은 아직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돼 있는 것 같다. 남은 두 달, 루아얄의 선전을 기대한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