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9) 임권택 영화제마다 기립박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임권택감독의 『길소뜸』(85년)이 비경쟁 하와이영화제에 나갔을 때는 동·서양간 영화세미나도 있어서 안병섭교수가 주제발표도 했었다. 이때 『길소뜸』이 상영되고나서 임권택이 소개되자 장내에서는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지더라고 안교수는 다녀와서 말했다.
그후 임권택은 『씨받이』(87년)로는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아다다』(88년)로는 몬트리올영화제에서, 『아제아제 바라아제』(89년)로는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기립박수를 받는다. 그러고는 뮌헨영화제·낭트영화제에서 각각 임권택영화주간을 특별개최, 1주간씩 그의 걸작영화들을 상영한다. 그리고 그의 영화들은 썩 다액은 아니지만 지금도 꾸준히 각국에서 수입해가고 있다. 이쯤 되면 그가 대감독이 안되려야 안될수가 없다.
그는 정창화감독의 조감독으로 있다가 『두만강아 잘있거라』(62년)로 데뷔한이후 액션·멜러드라마·전쟁극·사극, 심지어『몽녀』(68년)같은 안경끼고 보는 입체영화인 괴기영화까지 안만들어본 분야가 없다. 그의 오늘이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5년간 영화 저널리스트로 일해온 필자가 임권택 영화를 처음으로 주목하게 된 것은 『왕십리』(76년)였다.
현대인의 어딘가 허무적인 실체에 육박하는 힘을 가진 『왕십리』의 영화평을 쓴후 근 10년만에 설악파크호텔에서 있었던 영화인 세미나에서 만난 그는 이 영화를 연출할 때가 비로소 영화에 대한 개안을 할 무렵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신적·기술적 능력을 투입했을때였다고 말했었다.
그는 그후 『족보』(78년), 『깃발없는 기수』(79년), 『짝코』(80년), 『우상의 눈물』(80년), 『만다라』(81년)등 걸작을 연속해서 내놓는다.
『만다라』는 임권택영화의 평가를 결정적으로 굳히며 국제적인 주목을 아울러 받게한다.
임권택의 인생관조가 보다 깊고 오묘하며 원숙한 경지를 나타내는 최초의 영화는 『티켓』(86년)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티켓』은 지방 항구도시에서 다방을 경영하는 마담과 레지들의 생태를 그리고 있다. 다방이라면 한국의 거리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차를 마시는 장소다. 그래서 우리는 막연히 다방이라는 곳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임권택영화의 다방은 그곳에서 인생이 불꽃을 튀기며 갈등하고 쟁투하는, 보이지 않는 수라장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하여 『티켓』은 다방이라는 장소의 개념을 빌려 인생이 끝없는 쟁투·고통의 장소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있다. 그러한 무거운 주제를 표현하면서도 무척 재미있었다는데 이 영화의 묘미가 있다. 필자는 임권택영화중 가장 재미나는 것으로 이 『티켓』을 꼽는다.
임권택이 조감독시절 정창화감독은 한 커트 찍고나서는 『어때?』하고 늘 임권택조감독의 의견을 물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있어야했다. 그 커트가 OK인 것이 뻔한데도 꼭 묻고는 했다.
그래서 배우들도 한커트 찍고나서는 우선 임권택조감독의 눈치부터 보게될 지경이었다. 정창화감독의 이 『어때?』는 녹음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어떤 작업을 할때라도 조금도 방심하고 지낼 수가 없었다.
임권택은 그때 정창화감독의 『어때 ?』가 자신을 위해 약이 되었다고 지금 생각하고 있다.
임권택은 데뷔한후 얼마동안은 콘티를 정확히 짜서 그대로 찍어가는 편이었다.
그러나 10여편 하고나서부터 콘티가 최선인가하는 회의가 생겼다. 촬영하는 현장의 모든 조건은 미리 만든 콘티와는 전혀 다른데 그 콘티를 고수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 깨달은 것이다.
그는 현장에서는 비교적 오래 꾸물거리는 감독이다. 가능한한 최고의 장면을 찍기 위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는 또한 그의 영화장면들을 위한 로케 헌팅에 비상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 로케 헌팅에서 아름다운 풍경들을 찾아냄으로써 그의 영화들은 벌써 다른 영화들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씨받이』 『아다다』의 풍경이나 고색창연한 기와집들은 한국 어디에 이런 것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는 지금도 일이 너무 무섭고 고통스러워 도망다니고 있다. 그러나 일단 맡게되면 무섭게 달려들어 끝장을 내는 사람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