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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은 영화 감독 민족적 정체성은 묻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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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재일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 그보다 내 정체성은 영화 감독이다."

'훌라 걸즈'로 일본 최고 영화상인 일본 아카데미 영화상을 휩쓴 재일 교포 이상일(33.사진) 감독이 영화의 국내 개봉(3월 1일)을 앞두고 내한했다. 20일 오후 '훌라 걸즈' 기자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감독은 "작은 인간이 시대 흐름에 휩쓸리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내 영화의 일관된 주제와 통한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훌라 걸즈'는 16일 제30회 일본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여우조연상.화제상 5개 부문을 휩쓴 화제작이다. 재일동포 감독의 영화가 이 같은 돌풍을 일으킨 것은 처음. 지난해 9월 말 일본 개봉 이후 지금까지 5개월간 장기 상영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는 2002년 장편 데뷔 후 일본 영화계의 젊은 피로 주목받아왔다. 그리고 데뷔 5년 만에 다섯 번째 영화 '훌라 걸즈'로 주류 영화계에 무사히 안착했다. 재일 한국인 출신이지만 민족적 정체성을 앞세우기보다 보편적 영상언어로, 무거운 시대를 발랄하게 돌파하는 청춘물을 선보여왔다.

그는 '훌라 걸즈'는 "'스윙걸즈'류의 가벼운 음악영화가 아니라 젊은이들이 무언가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시대에 대한 초상"이라고 강조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것이 작품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이유로 영화현장에서 어떤 이지메나 차별도 받아본 적 없다"며 "다만 동시대 젊은 일본 감독들이 현재에 집중한다면,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배우고 자라 50~70년 전 시간까지 피부로 느끼는 나는 (역사적) 시각과 사고방식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재일 한국인에 대한 제도.법률상 차별은 사라졌다. 마음속 차별은 남아있을지 모르나 그것을 영화적 주제로 삼을 생각은 없다"며 "영화감독이 나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민족적 정체성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성립되지 않는 질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역사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국적 없는 '영화왕국'에서 살아가는 신세대다운 발언이다.

'훌라 걸즈'는 1960년대 폐광촌을 무대로 훌라 댄스에 도전하며 희망을 찾는 소녀들의 이야기. 실화에 기초했다. 최종 후보 지명에는 실패했지만 2007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 일본 대표로 선정되기도 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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