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한승인」 한­일 신경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진의 의심하는 한국/“국제관례 외면… 동북아 주도권 장악 노린 포석”/일의 한국견제 숨은 의도우려
일본정부의 대북한 국가 승인검토 공식발표로 한일 양국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과 수교교섭을 네차례나 진행시켜온 일본이 상징성이 농후한 국가승인이란 문제를 미묘한 국제법 이론을 근거로 공론화한 것은 상당히 도발적인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정부는 남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교류를 확대하고 신뢰를 쌓아 통일에 접근하자는 정책기조 위에서 다른나라가 북한과 수교하는데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이 북한을 승인하는 문제는 독자적으로 판단할 문제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더구나 일본과 북한은 이미 수교원칙에 합의하고 4차에 걸친 협상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점이 일본의 의도를 더욱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이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실질적인 변화를 원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는 것을 확연히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은 외무부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정부의 이러한 검토가 유엔가입이란 「사실상의 실체인정」을 계기로 한 것이란 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도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면 국가승인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일본도 여기서 빠질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이 그런 전례에도 불구하고,북한의 유엔가입과 국가승인을 구분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은 유엔가입과 국가승인에 대해 분명한 구분을 하고 있고 북한과의 수교는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국에 대해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양국처럼 이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일본이 일부 유럽의 관례를 운운한다는 것은 억지로 끌어댄 논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외무성 소식통을 인용해 유엔가입과 국가승인,수교를 각각 분리하고 있다.
유엔가입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것이며,국가승인은 영토·국민·주권이라는 세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유엔에 가입하면 반드시 국가승인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고 더구나 수교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 이러한 과정을 거치려는 이유는 뭔가.
일본 외무성(일본 언론 인용)은 북한 개방유도와 수교협상의 원활화를 그 이유로 들고있다.
그러나 한국 외무부는 일본과의 수교 교섭에는 굴욕적이리만큼 적극적이면서도 남북 대화에는 응하지 않고 있는 북한의 태도를 미루어봐도 무조건적인 수용은 남북관계 안정에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이다. 특히 경제적인 궁지에 있는 남한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지렛대가 일본이라고 생각하는 정부는 일본이 그러한 우리의 요구에 최소한의 협조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이 진정 의도하고 있는 것은 수교교섭의 가속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교교섭의 경우 일본보다 북한이 더 조급해 하는 것이 사실인데도 일본이 굳이 국가승인이라는 상징적 절차를 거치려는 것은 한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해석된다.
일본은 대북 수교 교섭과정에서 한국측이 제시한 △남북대화의 진전 △핵사찰수용 5개항의 조건에 대해 내심 불만스럽게 생각하는듯 하고 이와 관련한 미국측의 수교신중 요구에도 언짢아해 왔다.
따라서 일본은 한반도나 동북아 문제에서 보다 독자적인 주도권을 겨냥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국가승인과 같은 도발적인 문제로 나타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이 기본적으로 남북한 등거리 정책을 추구하며 앙측에 대해 이를 카드로 활용하려는게 아니냐는 한국의 일반화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외무부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그점이다. 또 애초 일본의 「묵시적」승인을 굳이 반대하려 하지 않았다가 일본측이 언론에 의미부여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를 하자 강경한 방침으로 전환한 것도 이러한 일본의 의도에 쐐기를 박아두자는 생각 때문이다.
처음 일본이 한국정부에 북한의 묵시적 국가승인 검토를 통고해온 것은 지난주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는 일본이 이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임을 고려해 미국·중국 등과 균형된 태도를 유지해줄 것을 당부하는 선에서 의견을 전달했다. 유럽지역과는 달리 일본의 대북한 수교에 전제조건을 요구한 것도 지역국가로서의 영향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외무부는 부인했지만,언론을 통해 그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 하려는 의도를 보였고 일본 경제신문 등은 미국까지도 승인할 것 같다는 등 사태를 왜곡하기도 했다. 국익위주의 일본 언론 자세로 볼때 이런 보도경향이 일본정부의 숨은 의도와도 무관치 않다고 본 정부는 가와시마 일본 공사를 외무부로 부르고,오재희 주일대사가 일본 외무성을 찾아가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하게됐다.
이에 대해 일본측은 사카모토 관방장관의 회견으로 「유엔승인과 국가승인은 별개」라는 등 한국쪽의 반발을 이해하는듯한 자세를 보였다.
일본의 보도에 접한 많은 한국인들의 반응이 북한의 국가승인 문제보다 일본이 교묘하게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태도에 대해 불쾌해 하고 있다는 점은 일본측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실상의 교차수교를 가까이 두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의 이같은 태도는 남북 양측으로부터 불신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양면성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김진국기자>
◎양면작전 쓰는 일본/수교 앞당기려 일부러 공론화/“유엔가입 따라 북한 「국제법 준수」인정되는 셈”
일본정부 대변인 사카모토(판본)관방장관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외무성쪽에서 사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일본정부가 외무성을 중심으로 북한 승인문제의 검토작업에 들어간 사실을 공식으로 인정했다.
일본정부가 이 시점에 갑작스럽게 북한 승인문제를 제기한 배경에 대해서는 외무성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순수한 의도로 보는 쪽은 남북한이 오는 17일 유엔에 동시가입함에 따라 북한의 국가승인도 자연스럽게 「사무적으로」검토할 단계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다.
외무성의 한 소식통은 국제법상 ▲영토와 주민,통치기구가 존재하고 ▲국제법을 지킬 의사와 능력이 있을 경우 국가로 승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국가승인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외무성의 일반적 생각은 북한이 객관적으로 보아 국가체제를 이루고 있으며 다만 「국제법을 지킬 의사가 있는지」가 문제이긴 하나 유엔안보이사회가 북한에 유엔가입 권고결의안을 낸 것 자체가 북한의 유엔헌장 준수의사를 인정한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외무성은 또 영국은 관례상 유엔가입 직후 국가승인을 표명하고 있으며 유엔을 무대로 북한과 일본간의 접촉이 불가피 하다고 판단,「사무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움직임에 불쾌감을 표시하는 한국정부를 무마하기 위해 일본은 북한 승인문제와 북한·일본 국교정상화 문제가 어디까지나 별개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이미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을 시작하면서부터 북한 승인이라는 카드를 준비,교섭촉진의 재료로 삼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다른 한 외무성 소식통은 일본 외무성이 「북한승인」을 염두에 두고 일찍부터 그 영향에 대해 분석했다고 전한다.
이 분석에 따르면 유엔가입이 실현되지 않은채로 일본이 북한을 승인하면 국제적으로 미칠 영향이 크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고 이은혜 문제 등으로 난항하고 있는 북한·일본 국교교섭에도 좋은 영향이 기대되며 국가승인이 북한에 핵사찰문제 등 국제적인 룰을 지키도록 하는 압력수단이 된다는 이점이 있다는 판단이다.
이같은 판단의 뒤에는 한편으로 가네마루(금환신)전부총리와 다나베(전변성)사회당위원장 등 조기수교론자에게 북한 일본 국교수립에 소극적이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효과도 노린다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내의 이같은 시각차이는 한편이 순수한 국제법적인 고려임에 대해 또 한편 이 정치적 효과를 계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정부의 대응을 곤혹스럽게 할 것같다.
일본내 관측통들의 견해는 ▲일찍부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한국정부의 태도를 고려,일본정부가 국교정상화와 동시에 북한을 국가로 승인할 것이라는 견해와 ▲북한의 유엔가입직후 관방장관의 환영담화 형식으로 묵시승인 하거나 11월초 북경에서 열릴 5차 국교정상화회담 직전에 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문제는 일본정부가 그동안 대북 교섭자세에서 보이고 있는 2중적 자세다. 겉으로는 「핵사찰」이나 「이은혜 문제」 등 한국이나 일본내 여론을 살피는듯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일본이 북한과 수교하는 것이 일본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일본 지도층내에 엿보인다는 점이다.
정부차원에서는 북한·일본 교섭이 지지부진하나 경제·문화 교류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사실상 「국가승인」이 이루어진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것은 북한 노동당 초청으로 작년 평양을 방문했던 일 자민·사회당이 남북 유엔동시가입 직후인 이달 19일 동경에서 「3당공동선언 1주년」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르기로한 것이다. 이날 가네마루와 다나베씨가 공동발의한 「일조우호협회」는 북한간의 수교를 촉진하는 북한의 일본 대표부 같은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
일본은 가네마루 전부총리의 평양방문 등에서 보듯 계산된 수순에 따라 북한·일본 국교정상화를 위해 정확하게 나아가고 있는데 반해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만 믿고 있다가 허를 찔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또 4대국교차승인 등을 내세우며 북방정책을 추진해온 한국정부가 이같은 일본의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일본정부의 북한 조기승인 움직임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 같다.<동경=방인철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