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콘텐트 넘어 시스템 수출할 단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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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류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류라는 이름이 필요 없습니다."

지난 16일 300여 명의 청중이 꽉 찬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3층의 대형 강의실. '아시아의 한류 (Hallyu in Asia: A Dialogue)' 세미나 발제자로 나선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사진)씨는 한류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민족주의를 탈색시켜야 한다고 다시 역설했다.

그는 민족이란 울타리를 뛰어 넘는 문화가 바람직하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한류 문화라고 해서 반드시 한국 사람이 만들고 한국 사람이 부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자신의 작품 활동을 한류로 규정하는 데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그는 "곧 발표할 작품 중에는 흑인 가수가 부를 것도 있다"며 "이런 것도 한류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간에는 영화.드라마.음악 등 한국의 콘텐트를 해외로 내보냈지만, 이제는 시스템을 수출해야 할 단계"라고 주장했다. 이런 차원에서 박씨는 뉴욕 한복판에 가수 육성 및 노래 녹음 등을 할 수 있는 'JYP 맨해튼 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쌍방향 문화 교류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그간에는 한국에서 문화를 만들어 밖으로 내보는 것으로 족했으나 이제는 외국의 반응과 문화적 수요를 흡수, 이를 반영하는 자세가 필요 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함께 발제자로 나온 방송인 박정숙씨는 문화 교류 등이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구성주의 이론(Constructivism)'을 적용, 한류를 분석했다. 그는 "국제관계에서 예술인 등 개인이 주체로 등장함으로써 한류가 한.일 갈등 등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일본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이날 세미나에는 하버드.MIT 등 미 명문대 교수 5명이 참석했다. 한류에 대한 학문적 고찰이 미 학계에서 싹트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은 한류와 관련된 이색적인 분석을 제기했다.

데이비드 르헤니 위스콘신대 교수는 한류와 같은 동아시아의 문화적 교류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동아시아의 갈등은 19세기 이후 일어난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며 "중국 역사서를 봐도 아시아 국가들은 과거 많은 문화적 교류를 했다"고 설명했다.

한류가 국제적 긴장 완화에 큰 역할을 할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한 패널리스트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중동 지역에서 인기를 끈다고 대미 감정이 좋아지지 않는다"며 "한류가 아시아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것이 특정 계층에서만 한국의 이미지 제고 등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스턴=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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