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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시시각각

규제의 본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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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래전 미국 유머집에서 읽은 얘긴데 요즘 서울 강남 거리를 생각하니 퍼뜩 떠오른다. 올 들어 강남구가 한국의 싱가포르를 표방하면서 부쩍 거리가 깨끗해졌대서다. 싱가포르에서처럼 그 깨끗함의 대가는 규제와 단속이다. 길에 담배꽁초 하나 버릴라치면 구청 공무원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과태료 5만원을 물린다니 웬만한 강심장이나 단속 사실 모르는 무지렁이 아니면 수명 다한 꽁초를 고이 모셔갈밖에.

덕분에 깨끗해진 거리를 걷게 된 시민들이나, 평소 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몰염치한들을 보며 속이 뒤집혔던 사람들은 우선 흡족할 터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구청장이 칭송받고 있다는데 마음 한구석이 영 불편하다. 그게 좋아 보인다고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까지 한다니 더욱 그렇다. 권력의 본능적 속성을 보는 것 같아서다. 규제와 단속은 권력이 행하는 가장 저급한 수단 아닌가. 언제까지 국민을 무지한 계몽 대상으로 인식할 것인지, 정녕 강제로 사회 선(善)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행여 구청 공무원들이 '역시 한국X들은 몽둥이를 들어야 말을 들어'라며 미소 짓고 있는 건 아닌지.

'깨진 유리창 법칙'에 빗대 꽁초 단속을 정당화하는 논리도 있나 보다. 지하철 무임승차나 거리 낙서 등 경범죄 단속을 강화했더니 폭력 등 강력범죄의 발생 건수가 줄어 뉴욕시가 효과를 봤다는 이론 말이다. 하지만 (지하철 범죄의 개연성이 있는) 무임승차나 (스프레이로 벽을 온통 물들이는) 낙서와 (단순한 시민의식 부재의 결과인) 꽁초 버리기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보다는 영미권 '유모국가(Nanny State)' 닮아가기로 보는 게 옳겠다. 정부가 유모처럼 따라다니며 간섭하고 보호하는 나라 말이다. 공중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뒤 물을 안 내려도 벌금을 무는 싱가포르는 말할 것도 없다. 미국 역시 횡단보도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만 있어도 벌금 100달러를 물리는 법안이 뉴욕주에서 제출됐으며 영국 총리는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가구를 3개월간 강제퇴거하고, 불량청소년을 방치하는 부모에게 벌금을 물리는 '초현실적' 존경회복계획(Respect Action Plan)을 발표해 빈축을 샀다.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강남구민에게 필요한 조치들은 분명 아니지 않은가. 꽁초를 버려 단속된 사람의 90%가 강남구민이 아니라는 게 강남구청 측의 설명이긴 하다. 구민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는 변명 같은데 그래서 더 착잡하다. 이번엔 노엄 촘스키가 비판하는 '유모국가'가 생각나서다. 촘스키에게 미국은 부자들만 보호하고 후원하는 유모국가다. 촘스키식으로 해석하면 강남구 주장은 변변찮은 타 구 사람들이 훌륭한 강남을 꽁초로 더럽히는 행위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게 된다.

무리한 비약일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유모국가는 시민들의 사생활만 참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개인이나 기업의 경제활동에 제동을 거는 경우로 확대되기 마련이며 온갖 불필요한 규제들은 그렇게 출발하는 것이다.

공자는 "형벌로 다스리면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죄를 면하려고만 하며 예(禮)로 다스리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른 길을 가게 된다"고 했다. 꽁초 단속에 나선 구청직원 200명이 고압적으로 신분증을 요구하기보다 사람들이 버린 꽁초를 눈 앞에서 주움으로써 부끄러움을 알게 했다면 어땠을까. 장기적으로 훨씬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거리에 버려진 꽁초는 사사건건 간섭하려는 정부보다 덜 위험하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