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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말」 천대 무개성문화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아름다운 우리말을 아낀다고 자처하는 유식한 애국선비·애국관료들이 만들어 낸 문화정책·교육정책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각 지식분야에 망라된 갖가지 「사투리 말살정책」이다. 내가 종사하는 광고분야만 보아도 방송광고 사전 심의제도라는 시퍼런 칼·도마가 있어 아이디어를 생명으로 하는 전문인들이 저마다 머리를 짜 재미있게 제작한 방송광고물들을 거기에 올려놓고 엄정하게 심의하도록 되어있는테 거기에서 가차없이 잘려나가는 문제요소중 하나가 바로 사투리 부분인 것이다.
방송위원회 규칙 제26호로 제정된 방송용 광고 심의세칙 제7조 「올바른 언어생활확립」을 보면 『광고는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을 해칠 우려가 있는 다음 각호의 l에 해당하는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①비속어·은어·조어 등의 사용 ②외국어 및 외국인 어투의 남용 ③불필요한 사투리 사용』이라고 되어 있다.
인간의 기초커뮤니케이션수단인 언어를 마치 군대식으로 「올바르게 확립」해 보겠다는 발상의 어법도 놀랍거니와 우리네 각 지방 토속고유의 구수하고 정감어린 고향말들이 사투리라는 이름으로 싸잡혀 저질의 비속어나 은어·조어 또는 외국어따위와 동류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놀랍기만하다.
이것이 어디 비단 광고분야 뿐이랴. 해방 이후 우리의 일부 지식관료들은 일제때의 떳떳지 못한 지적 행적을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호도해볼 요량으로 너도나도 애국적 한글운동·우리말운동에 다투어 앞장섰던 한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그런 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급격히 팽배하기 시작한 일련의 표준말 만능주의가 방송등 시대적인 매스컴의 발달·보급현상과 맞물려 결과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사투리 전멸의 위기시대를 자초하고 만 것이다.
요즘은 제주도에서도 진짜토속어로서의 제주도말을 들어보기 힘들다. 전주나 광주등 지방 대도시 사람들은 이미 서울 표준어에 가깝게 세련(?)되어버린 이상한 지역어를 쓰고 있다. 경상도말이나 충청도말·강원도말 또한 이미 그 본디의 맛을 잃기 시작한지 오래다.
자기네 본디의 말이 사실은 얼마나 투박한 멋스러움으로 문화와 역사의 깊이를 일깨워주는 말투였는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언어문화의 발전이란 언어생활의 확립을 통한 획일화가 아니라 아름다운 고향말들의 다양한 보전·계승을 뜻하는게 아닐지.
서울말만 말이고 고향말은 말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에서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민족생활문화의 귀한 유산인 고향말의 보호는 그래서 우리의 후대를 위해 자연보호 이상으로 가치있는 일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사투리를 「고향말」이라 불러 제도적으로나 관념적으로 서로 보호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고향말을 천시함은 곧 고향의 문화, 고향의 역사를 천시함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름모를 식물이나 새는 보호하자고 하면서도 어찌하여 고향말을 보호하자는 운동은 이땅에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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