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와 유머가 공존 … 인도 민중의 숨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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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재치있고 유머러스하고 허무주의적이다.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인도작가 탈루(35.Tallur L.N.) 초대전을 본 감상이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2m 높이의 코끼리 한 마리가 관객을 맞는다. 엉거주춤하게 서서 쑥스러운 눈빛으로 비스듬히 쳐다보고 있다. 왜? 의문은 엉덩이 쪽에서 바라보아야 풀린다. 그 밑에 덩어리 하나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재질은 은이다).

'볼일'보는 모습이며 그걸 들킨 눈빛이었다. 의미? 코끼리는 조국 인도, 혹은 인도의 민중을 상징할 것이다. 덩치는 크지만 수탈만 당해온 존재. 그가 '싼' 것이 실은 은덩이다. 인도(혹은 민중)의 것은 '대변'조차도 너희들의 은에 해당할 만큼 정신적인 가치가 있다는 주장으로 읽을 수도 있다.

벽 쪽으로 가면 가마니를 네모꼴로 쌓아놓은 설치가 보인다(아래 사진). 관객은 복판에 들어가 파란 단추를 누르게 된다. 그러면 가마니가 부풀어 오른 뒤 통째로 기울어지면서 관객을 압박해온다. 아이쿠! 전시 제목도 'Panic Room(공황장애 방)'이다. 몰라서 그렇지 사회 전체가 공황장애 상황이라는 주장일 듯 하다.

유적지에서 발굴한 신상의 모습도 있다. 원래는 신성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에 의해 뭉개진 모습은 "오늘날엔 설 자리가 어디에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품 제목도 그래서 '알츠하이머 (병)'이다.

2층의 조각 '얼굴을 살리자'도 재미있다. 몸매가 매끈하고 얼굴도 멋져보이는 인물이 은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뺨은 심하게 부식돼있다. 거울은 상한 얼굴을 가리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다. 원제는'Saving face!'니까 한국어로는'체면 지키기'가 맞을 것이다.

탈루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도의 젊은 작가 중 하나다. 인도에서 회화와 박물관학을 배우고 영국 리즈대에서 현대 미술을 전공했다. 시각적인 신선함과 개념적인 완전함으로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며칠 전 기자간담회에서 "나의 모든 작업은 6단계를 거친다. 1. 열정, 2. 환멸, 3. 공황, 4. 유죄찾기, 5. 무죄 응징하기, 6. 불참자들을 찬양하고 그들에게 영예를 돌리기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전시장을 찾아가 그의 작품들에서 각 단계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도전이 될 것이다. 3월 2일까지. 02-723-6194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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