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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우린 16세기에 철갑선 만들었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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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정주영 회장이 차관을 얻기 위해 접촉한 영국 버클레이은행 중역은 여러모로 정 회장을 자극시켰던 것 같다. 그들이 기업을 대할 때 어떤 자세였던가 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보여주고 있는 기본자세하고는 판이했던 것이다.

그 사이 현대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았습니까?
“아, 나중에 알았지만 철저히 조사를 했어요. 첨에는 롱바톰 회장이 한국까지 와서 직접 우리 현대가 했던 발전소, 정유공장, 해외건설, 고속도로, 그런 공사들을 전부 체크하고 갔지요. 거기다가 조선소를 지을 부지까지 봤는데 거긴 내가 토목공사를 시키고 있었거든? 내가 그럴 줄 알고 전갑원이를 시켰더니 그눔이 암반이 안 나온다고 투덜거리다가 나한테 혼났지. 하하항. 하여간 그런 걸 전부 보고서 버클레이은행에 추천서를 써줬는데도 버클레이은행에서는 그보다 더 철저하게 조사를 했어요. 각종 플랜트사업에서부터 교량 건설까지 부실이 없었는지도 조사하고 그룹의 대차대조표까지 뒤지고 말이지. 심지어 한국에 질 좋은 노동력이 있느냐 하는 것까지 알아봤다니까 그냥 만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 걸 보면 우리 금융기관들은 멀었지요.”

대단하군요. 만나시니까 어떤 내용을 궁금해 합니까?
“앉기가 바쁘게 이 양반이 얘기를 하는데 그게 면접이에요. 토스트를 먹어가며 얘기를 하는데 아주 예리해. 그렇지만 나는 대충 어떤 얘기를 할 거다 하는 걸 예상하고 나갔거든? 근데 우리가 25만t급 배를 만들겠다고 했으니까 대뜸 한국에서 25만t급 배를 보기나 했냐고 묻잖아. 난감하대…, 그냥 봤다는 대답만 해서는 대화가 끊어지잖아요. 그럴 때 순발력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게 500원짜리 지폐야. 그 당시 500원짜리에 거북선이 있었거든? 근데 내 지갑에 500원짜리가 없으면 큰일이잖아요. 근데 덜덜 떨면서 지갑을 꺼내 보니까 마침 있잖아! 하하항. 이거다 하고선 탁 내놓고 그랬지. 부총재는 16세기에 철갑선을 봤느냐고 말이야, 이게 16세기에 만든 대한민국 거북선이다, 대한민국 거북선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지폐에 새긴 거니까 대한민국 국민이 건조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고, 이 철갑선을 봤느냐고, 이게 지금으로 보면 유조선은 게임이 안 되는 함정이라고, 하하항. 그랬더니 부총재 눈이 팽 돌아가는 거야. 저들은 19세기에 처음으로 강선을 만들었거든? 더구나 해양대국이라는 영국인데 말이야, 그러니 눈이 안 돌아가고 배겨? 하하항.”

“옥스퍼드에서 박사학위 주더라”

(웃으며)만약에 500원짜리 지폐가 마침 없었으면 어떡하시려고 그랬습니까? 회장님 지갑에 500원짜리도 넣고 다니세요?
“그러니까 지갑에 손이 갈 때 덜덜 떨었지, 하하항. 내 지갑에 만원짜리는 하나도 없어, 다 잔돈이지. 그러고 내 얼굴이 돈인데 뭐, 하하항. 근데 부총재가 참 인상적인 사람이에요. 거북선을 보더니 아주 진지해져요. 자기네가 해양대국이기 때문에 강선은 세계 최초인 줄 알았다면서 3세기나 뒤늦게 강선을 만들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더구나 한국한테 뒤졌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역사적 사실은 우기지 않고 인정을 해요. 그게 신사의 나라 사람들이에요.”

그것으로 인터뷰는 끝나는 셈이었습니까?
“아니지요. 그 다음 질문이 의외예요. 내가 예상한 건 하나도 안 물어. 정 회장은 대학 전공이 이공학입니까, 경영학입니까? 이렇게 물어요. 이거 또 난감하두만. 내가 비록 대학은 안 나왔지만 모든 사회 경험을 대학 나온 사람 이상으로 경륜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얘기는 구질구질하게 하기 싫잖아요? 그래서 내가 그 부총재를 바라보고 웃으면서 오히려 반문을 했지요. 부총재께서 우리 조선 사업 계획을 보셨느냐고. 부총재가 봤을 리 없죠. 금융맨이고 봐야 알 턱이 없고 다만 융자를 검토하는 단계니까 밑에서 심사한 얘기를 들었을 테지요. 근데 이 사람이 능청스럽게 봤다고 그러잖아요. 그렇다면 잘 됐다 싶어서 나도 능청스럽게 시침을 뚝 떼고 그랬지요. 내가 버클레이은행에 낸 사업계획서를 옥스퍼드대학에 먼저 내봤다. 어제가 일요일인데도 그걸 제출하니까 대번 박사학위를 주더라. 그래서 내가 옥스퍼드대학 경영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이러면서 막 웃었어요. 그러니 뭐 부총재도 막 웃고 그랬는데 그 부총재가 더 재치 있어요. 역시 옥스퍼드대학이 권위 있는 대학이라고, 왜냐하면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한 박사도 사실 이런 계획서를 못 만들 거라고, 그런데 정 회장 같은 사람을 골라내는 거 보니 역시 옥스퍼드대학이 유명하지 않으냐고, 이러면서 웃는 거예요.”

결국 승인을 했습니까?
“그렇죠. 여러 가지 환담을 하면서 몇 가지를 더 알아보더니 버클레이은행에서는 차관을 결정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영국에서는 차관 시스템이 은행 결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은행이 결정을 하면 최종적으로 ECGD(Export Credit Guarantee Department)라고, 수출신용보증국이라는 곳에서 승인을 해야만 하는 겁니다.”

사실상 ECGD의 승인이 관건이었다. 영국에서는 차관을 해간 나라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영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은행에 보상을 해주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ECGD의 기준은 손톱이 들어갈 허점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행이 사업성 평가에서 만족스럽다는 결과를 통보해도 신용보증국에서는 별도의 조사를 했고, 차관 도입국가의 신용도와 경제적 성장성까지 체크를 할 정도였다. 그러니 서류가 보증국으로 넘어가면 현대만 장래성이 있어서 될 일도 아닌 셈이었고 정부의 신용도까지 검토가 된다는 얘기였다.

▶1970년대 사용하던 500원짜리 지폐. 정주영 회장은 영국 버클레이은행 중역들에게 이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가리키며 “우리가 바로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든 나라”라고 큰소리를 쳤다. 이런 순발력으로 정 회장은 버클레이은행 대출 건을 성사시켰다.

“한국 빅맨이 체어맨 정 맞나”

신용보증국의 승인은 낙관 하셨습니까?
“어떻게 낙관을 해요? 우리 현대의 신용이나 장래성은 솔직히 자신이 있었지만 그 당시 우리 정부의 이미지가 엉망이었단 말이에요. 어느 나라나 노사분규 일어나면 완전히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예요. 그 회사에 대해 먹칠을 하는 게 아니고 국가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지요. 근데 그 당시 평화시장 전태일 분신사건이 일어나 거리가 시위대로 혼란스러웠지요?”

아주 난감하셨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떡해요. 어렵게 은행을 통과했는데 한국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수 있어요? 수출 보증국에 승인신청서를 내고 또 기다리는 수밖에요. 근데 참 희한해요. ECGD에서는 그때까지 개인기업주를 직접 인터뷰한 예가 거의 없고 대부분 정부관료를 불러 조목조목 심사를 하는데 우리 정희영 상무가 노력도 했겠지만 존 코긴스라는 ECGD 국장이 직접 나를 만나보겠다면서 연락이 왔어요. 거기 국장은 다른 부처하고 달라서 완전히 독립기구이기 때문에 장관급이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결정을 하다시피 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만나자고 하니 일단 한국의 불안한 정국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검토를 해보겠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말이야, 만사를 제쳐놓고 냉큼 만났지요. 하하항.”

그러나 여기에도 비화가 있었다. 정희영 당시 런던지점장이 ‘콧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몸살을 앓아가면서’ ECGD 국장과 친밀한 사람을 찾아 온갖 노력을 다 했겠지만 ECGD 자체적으로 어느새 현대의 공사 능력과 국가의 성장 잠재력에 대해 이미 조사할 수 있는 자료는 전부 빼냈더라는 것이다. 인맥으로 대부분 융자를 해결하는 한국의 금융 시스템하고는 질적으로 달랐다는 얘기였다.

ECGD의 심사는 은행하고 차이가 있었습니까?
“아주 합리적이었어요. 일단 은행에서 심사한 내용을 중복 심사하는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구요, 신뢰를 하고서 자기들 의견을 얘기하는 거예요. 탁 만나니까 뭐라고 하는고 하니, 첫마디가 ‘한국의 빅맨이 체어맨 정이냐’고 그래요. 근데 이건 통역을 안 해도 내가 알아듣거든? 이런 거까지 통역하면 분위기가 깨진단 말이야. 그래서 비켜 임마, 그래놓고는 웃으면서 벌써 조사를 했냐고, 빅맨이 아니라 정주영이 자체가 자이언트라고, 그랬더니 막 웃으면서 역시 은행에서 얘기한 그대로라고 하잖아요. 하하항. 분위기가 아주 좋아진 거지요.”

정 회장의 영어 실력은 2000단어를 구사할 정도라고 했다. 그러니 웬만한 영어는 직접 메모를 하고 머리가 비상해서 중요한 협상 내용은 마치 속기를 하듯 자신만 알고 있는 특수한 부호로 적어두기도 한다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니까 나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지적을 하면서 논리가 아주 정연해요. 계획서는 잘 봤다, 애플도어라는 영국의 일류 기술 회사가 현대 기술자들을 영국에 데려와서 훈련 시키고, 스콧 리스고에서 도면을 받아 그대로 만들고, 그렇게 해서 현대가 인력을 잘 관리하면 건조를 할 수는 있을 거다, 그거야 영국의 최대 기술 회사가 참여하는 거니까 자기네가 인정을 하겠다 이거죠. 그러면서 그래요. 배만 주문해서 만들면 수지가 맞으니까 원금과 이자는 갚을 수 있겠다 하는 것도 버클레이은행 쪽에서 얘기를 하고 있으니 그것도 역시 그렇게 믿겠다, 다 믿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자기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이거예요.”

“누가 한국에 배 주문 하겠나?”

ECGD 측에서 의문이 있다고 하면 중요한 포인트가 됐을 것 같습니다만….
“그게 핵심이었어요. 뭔고 하니, 세계 선진국에는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여러 조선소가 있다, 그런데 한국이 영국에서 돈을 빌려 50만~60만t급 큰 도크를 만들어 30만t급, 50만t급 등 세계 최대의 배를 만들고 그걸 팔아 원리금을 갚겠다고 했는데, 내가 선주라면 한국에 주문 하지 않겠다, 누가 후진국 조선소에 그 엄청난 배를 주문하겠느냐, 한국이 지금까지 그런 큰 배를 한번도 만들어보지 못했고 경험도 없는 그런 나라 아니냐, 그런데 정 회장 같으면 주문을 하겠느냐? 내가 선주라면 주문을 안 하겠다, 이렇게 나온 거예요. 야…아찔한 겁니다. 그 순간 숨이 탁 막혀요. 그러니까 배라는 것은 다른 상품처럼 미리 만들어놓고 파는 것이 아니고 주문에 따라 제작해 파는 거니까 선주가 주문을 안 하면 만들 수도 없는 거고, 배를 만들어 팔지 못하면 돈은 갚을 수 없지 않으냐, 그런 얘기 아니에요?”

결정적인 관문이라고 할 수 있었겠군요.
“배를 주문하는 선주가 있어야 되겠다, 말하자면 배가 팔린다는 증명을 가지고 오든지 배를 주문하겠다는 선주의 계약서를 가지고 오라는 소리지요. 사실 그 얘기가 이치에 맞고 아주 사리에 맞는 얘기예요. 그러니 정말 결정적으로 탁 막히는 거지요. 그건 내가 답변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선박을 발주할 선주가 할 수 있는 대답이란 말이에요. 눈앞이 노랗더라는 말을 그때 내가 실감했어요. 근데 우리 정부에서는 내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가도 모르고 부총리가 밤만 되면 잘돼가지요? 이러면서 전화야, 미치겠어. 하하항.”

해결책을 찾아야 했을 것 아닙니까?
“당장 방법이 없잖아요. 국장한테는 선주를 찾아보겠다 하고선 맥없이 물러나오는 거지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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