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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高총리 왜 이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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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건(高建)국무총리는 평소 말을 아낀다. 신중한 행동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아무리 유도성 질문을 던져도 잘 말려들지 않는다.

이런 高총리가 요즘 달라졌다.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했다.

高총리는 26일 주한 유럽연합 상공인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이라크 파병 계획을 묻는 질문에 "특정지역을 맡아 독자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계획을 갖고 미국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지역을 맡지 않고 의무.공병 등 기능적으로 접근하는 방안▶특정지역을 맡아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방안이 있는데 미국이 특정 지역을 담당해 달라고 요청해 첫째 안은 폐기하고 둘째 안을 갖고 미국과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민감한 현안인 만큼 이 발언은 큰 관심을 끌었고 몇몇 신문은 이를 크게 다뤘다.

그러나 이날 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기능 위주의 파병안이 폐기된 게 아니며 앞으로 미국 측과 협의할 예정"이라며 "高총리의 '폐기'란 표현이 너무 앞서 나갔다"고 지적했다.

이러자 高총리는 28일 오후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두 가지 방안에 대해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발언을 번복한 배경에는 외교 관계 등 말 못할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이번 발언은 사려 깊지 못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高총리는 최근 부안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투표와 관련해서도 말을 바꿔 혼선을 빚은 적이 있다.

행정의 달인이라는 高총리가 왜 이럴까. 정보가 부족해서일까, 통솔력이 모자라서일까. 총리가 주요 국정 추진 과정에서 물먹고 있다면 큰 문제다. '강한 총리'를 보고 싶다.

정철근 정책기획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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