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푸틴을 좋아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조지 W 부시(사진(左))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일방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블라디미르 푸틴(右) 러시아 대통령에게 14일 유례없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올해 들어 처음 열린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다. 부시는 푸틴의 비난을 반박하는 대신 '미국과 러시아는 다르지만 여전히 친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러시아의 민주주의 후퇴와 푸틴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비판해오던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부시가 푸틴을 정치적으로 '짝사랑'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부시의 구애(求愛)=부시는 주요 국제현안을 언급하며 러시아와의 관계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양국관계는 공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관계이며 이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부시는 "특히 푸틴에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장이 러시아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득했으나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 같은 이견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중요한 현안에서 협력을 계속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러는 이란과 북한 핵문제와 관련, 견해가 달랐음에도 결국 유엔 안보리에서 두 나라에 대한 제재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며 갈등보다 협력을 강조했다. 이어 "푸틴은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며 "임기 내내 그와 협의를 계속해왔다"고 말했다.

푸틴이 10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와 나토 확장 정책을 성토한 뒤 부시가 미.러 관계를 언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푸틴은 "미국은 무력으로 다른 나라에 자신의 법적 기준과 정치.도덕적 가치들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미국이 폴란드.체코 등에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려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고 "나토 확장은 상호 신뢰를 잠식하는 심각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푸틴은 지난달에도 "양극체제가 무너진 뒤 일극에서 모든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이 생겼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미국을 비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최근 에너지 자원을 무기로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해온 푸틴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왜 푸틴 껴안기 나섰나=부시는 2001년 6월 푸틴과 첫 정상회담을 한 뒤 "그는 신뢰할 만하고 영감이 있는 인물"이라고 칭찬했다. 그 뒤 러시아가 미국의 대테러 작전을 적극 지원하면서 양국은 밀월을 이어갔으나, 푸틴이 국내에서 민간기업과 자유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소련권 민주화 혁명에 간섭하면서 다시 냉각기로 접어들었다.

최근 들어 계속된 푸틴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푸틴에게 '러브 콜'을 보낸 데 대해 전문가들은 이라크 사태 수습, 이란과 북한 핵문제 등 난제를 푸는 데 러시아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현실적 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유철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