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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원로 극작가 이근삼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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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원로 극작가 이근삼(李根三.서강대 명예교수)씨가 28일 오전 11시 서울 공릉동 원자력병원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74세.

고인은 1929년 평양에서 태어나 동국대 영문학과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뉴욕대 대학원을 수료했다. 유학 중 영문 희곡을 써 연극무대에 올리기도 했던 그는 59년 단막 희곡 '원고지'를 '사상계'에 발표하며 본격적인 극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자신의 희곡에서 풍자와 해학을 바탕으로 사회 부조리와 현대인의 위선을 날카롭게 비판, 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자잘한 비리를 저지르며 살아가는 소시민을 다룬 연극 '국물 있사옵니다'(66년)를 비롯, '유랑극단' (72년) '일요일의 불청객'(74년) '요지경' (80년) '게사니' (83년) 등 20여편에 이른다. 특히 그의 희곡 '게사니'는 브레히트의 대표작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과 견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62년) '제18공화국'(65년) '아벨만의 재판' (75년) 등 한국적 정치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은 작품도 여럿 선보였다.

고인의 창작열은 말년에도 식지 않았다. 2000년 이후 쓴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 등은 고인 특유의 풍자와 페이소스에 따뜻한 인간미를 더했다.

고인은 극작 활동과 더불어 30년 넘게 동국대. 중앙대. 서강대 등 대학 강단에 섰다. 특히 25년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할 때 많은 제자를 연극의 길로 이끌었다. 91년 예술원 회원이 된 그는 연극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94년)과 옥관문화훈장(94년)을 받았다.

연극계 후배들은 연극에 대한 애정이 깊고 성품이 온화한 고인을 존경했다. 큰 키에 선한 인상, 특유의 이북 사투리는 그에 대한 정감을 더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늘 인자하고 밝은 모습인 고인에게도 남모를 아픔이 하나 있다. 80년대 후반 연극을 하던 그의 외아들이 교통사고로 숨진 일이었다. 아들을 화장한 날 슬픔을 삭인 채 미리 약속했던 연극배우 윤주상의 결혼식 주례를 선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지난해 8월 폐암 선고를 받은 고인은 투병 중에도 공연장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연극평론가 구히서씨는 "새해가 되면 선생님 댁에 세배를 드리러 가는 게 후배들에겐 하나의 '코스'일 정도로 고인은 연극계의 정신적 지주였다"며 "후배들의 작품에 질책보다는 칭찬으로 힘을 북돋아 주신 분이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인숙씨와 유리씨 등 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다음달 1일 오전 7시. 장지는 충남 천안시 천안공원묘지. 02-760-2016.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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