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차례상 올리자니 … 너무 비싼 한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농림부를 담당하는 기자이자 가정주부로서 시장에 들르면 난감할 때가 많다. 어제는 설을 앞두고 부산 시댁에 갈 준비를 하러 동네 수퍼를 찾았다.

"등심 얼마예요?" 한우 쇠고기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점원이 대답했다. "1㎏에 7만5000원입니다."

시댁 식구랑 우리 식구의 숫자를 떠올리니 족히 3㎏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어머나, 20만원이 넘네. 그냥 2㎏만 주세요." 차례상에 수입 고기를 올릴 수는 없고…, 양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한우를 먹은 기억이 일 년도 넘은 것 같다. 한 근에 2만원이 넘는 한우 대신 언제부터인가 절반 값인 호주나 뉴질랜드산 쇠고기를 찾기 시작했다. 쇠고기보다 돼지고기나 닭고기에 손이 가는 것도 익숙해졌다.

우리 집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돼지고기 값이 오르는 게 만만치 않을 걸 보면 말이다. 요즘엔 돼지고기도 한 근에 1만원은 줘야 한다. 이런 현상을 모두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2003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한우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2003년 ㎏당 5만원 정도였던 한우는 올해 8만원 대를 육박한다. 현재 할인점에서 파는 한우 등심 1㎏은 7만7000원. 4인 가족이 한 번 먹으려면 10만원이 든다는 얘기다.

과연 우리 축산농가들이 떼돈을 버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쇠고기 수입량은 전년 대비 26%나 늘었다. 이미 국내 쇠고기 시장의 51.9%를 수입산이 차지했다. 지난해 국민 1인당 연간 쇠고기 소비량도 6.8㎏으로 4년 전(8.1㎏)보다 많이 줄었다. 그런데도 일단 소값은 반짝 경기를 누리고 있다. 덩달아 너도나도 송아지를 입식하는 것이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13일 열린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국회의원들이 "미국 쇠고기의 뼛조각, 뼈 부스러기 하나도 들여오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림부도 "수입 쇠고기 검역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 수의사를 공무원으로 다 바꾸겠다"고 맞장구쳤다. 축산농가와 농림부.국회의원들은 광우병 공포와 식탁 안전을 부각시키는 데 열심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쇠고기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는 전문가들의 권고를 외면하고 있다. 왜 33회나 광우병 소가 발견된 일본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지 귀를 막고 있다. 일본은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서도 자국산 쇠고기 '和牛(와규)'를 세계 최고라며 자랑스러워 한다.

아무리 부인해도 미국산 쇠고기 시장 개방은 곧 부닥칠 미래다.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에서 미국이 2급 안전 등급을 받으면 개방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게 뻔하다. 그 이후를 대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허용되면 국내 송아지 가격이 20% 이상 떨어질 것이라는 농촌경제연구원의 경고가 무겁게 다가온다. 소값 폭락에 송아지를 무더기로 땅에 묻고 축산농민들이 울상을 짓는 비극적인 장면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이라도 농림부와 정치권은 냉정하게 앞날을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연 막무가내로 목소리만 높인다고 축산농가를 위한 것일까. 오랜만에 맛보는 한우 등심 맛이 왠지 쓴 느낌이다. 제발 암울한 시나리오로 흐르지는 말아야 할 텐데….

박혜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