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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영어강의 몸살 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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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KAIST)의 2007학년도 신입생 600여 명 중 280명은 1월 말까지 2개월간 해외 영어연수를 다녀왔다. 학교 측이 마련한 어학연수 프로그램이었다. 캐나다(130명), 뉴질랜드(110명), 필리핀(40명)에 각기 분산된 학생들은 현지 어학원에서 8주 동안 매일 5시간씩 영어 강의를 들었다.

카이스트가 국내 모 영어 관련기관의 소개로 선정한 어학원들이었다. 매일 원어민 영어강사들과 말하기 2시간, 쓰기·읽기·발표에 각 1시간씩을 보냈다. 캐나다 500만원, 뉴질랜드 475만원, 필리핀 400만원 등 본인이 원하는 행선지에 따라 학생들이 참가비를 부담했다.

그러나 귀국 후 카이스트가 주관하는 영어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현지 어학원 평가까지 모두 좋으면 학생들은 연수비의 30%에서 60%까지 환불 받는다.

학생들은 현지 원어민 강사의 지도 하에 각기 조를 짜서 영어 연극도 준비했다. 2월 23일 입학식에서 학부모를 상대로 영어 연극을 경쟁적으로 공연한다. 여기서 입상하면 노트북이 부상으로 지급된다.

카이스트가 이처럼 영어 교육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올해부터 신입생이 듣는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낙오자가 없게 하려고 학생들을 미리 영어 전용 환경에 노출시켰다. 이 학교의 입학 전 어학연수 프로그램 실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부임한 서남표 총장은 국내 대학 최초로 ‘신입생 100% 영어강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교양과목이나 한국문학, 한국시, 논술, 국사 등 영어 강의가 곤란한 과목은 3, 4학년 교과과정으로 미뤘다. 국경 없는 무한경쟁 시대에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려면 어려서부터 영어생활을 습관화해야 한다는 서 총장의 지론 때문이다.

카이스트는 과연 단 1%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을까. 학부와 대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해보았던 권혁상 카이스트 국제홍보처장도 “영어로 강의하다가도 학생들이 이해 못 한다 싶으면 다시 한국어로 설명을 하곤했다”고 말했다. 일단 한국어를 한번 쓰게 되면 다시 영어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았다고 권 처장은 기억했다.

그래서 카이스트는 올 1학기부터 외국인 학생 50명을 학부 신입생으로 받아들여 1학년 수업에 ‘투입’한다. 루마니아, 필리핀, 태국, 중국 등 10여 개국에서 영어가 유창한 유학생을 선발한다.

이들은 학부 1학년 신입생이 듣는 모든 강의에 분산 배치된다. 그렇게 되면 교수들도 부득불 영어로만 강의해야 한다. 원래 카이스트 학부과정에는 외국인 유학생이 통틀어 20명도 채 안 됐다. 카이스트에 유학 중인 외국인 160여 명은 대부분 석·박사 과정이었다.

영어 강의 확대는 모든 대학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포항공대는 현재 학부 25%, 대학원 35% 수준인 영어 강의 과목을 확대해 2010년까지 모든 수업을 100% 영어로만 강의한다는 목표다.

졸업 요건으로 영어 강의 수강을 의무화하는 대학도 늘어난다. 고려대는 2004년 입학생부터 영어 강의를 5과목 이상 수강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성균관대도 올 신입생부터는 졸업 학점의 10% 이상을 국제어(영어) 강의로 채우도록 했다.

서강대의 경우 06학번은 3과목 이상, 07학번은 4과목 이상의 영어 강의를 수강해야 졸업한다. 2008년도 신입생은 5과목을 영어 강의로 수강케 할 계획이다. 2006년도 신임교수 임용 시에는 영어 강좌 개설을 의무화하는 조건을 부여했다.

한양대는 지난해부터 신입생에게 영어 강좌를 학점에 관계없이 세 강좌 이상 듣도록 했다. 아주대는 올해 전체 전공과목 928개 중 57개 과목(6.1%)을 영어로 진행한다. 학생들에게 영어 강의 수강 의무를 지우지는 않았으나 단과대학별 영어 강의 비율을 단과대학 평가관리 지표로 활용한다.

전공과목까지 영어 강의를 듣게 하는 대학도 있다. 고려대의 경우 올 신입생들은 제2 전공을 포함해 전공과목 강의 5개를 영어로 이수해야할지 모른다.

지난해 어윤대 총장 재임 당시 이런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이필상 현 총장이 어 전 총장의 방침을 그대로 확정할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고 박노형 고려대 교무처장은 말했다. 성균관대도 2007년 신입생들은 교양과 전공, 각각 2과목을 영어로 수강해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10월 전국 대학으로부터 ‘2006년도 외국어 전용 강좌 현황’ 자료를 취합했다. 이에 응한 125개 대학 중 외국어 전용 강좌를 단 1과목이라도 개설한 학교는 92개교(20쪽도표 참조)로 73.6%에 달했다. 대부분 영어 강의다. 대학마다 영어 강의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교육부 대학학무과 박승렬 사무관은 말했다.

대학들이 영어 강의를 의욕적으로 확대하는 이유는 있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영어는 확고부동한 중심언어로 군림하기 때문이다. 세계화·국제화 시대에 국제어인 영어를 모르고서는 글로벌 지식을 얻기도 어렵다.

그래서 “폭넓은 지식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 세계와 경쟁하려 영어 강의를 확대한다”고 우재철 서강대 홍보실장은 말했다. 무역자유화 협정(FTA) 등 개방이 본격화되면 개인 차원에서도 세계의 인재들과 경쟁해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영어의 경제학’을 보면 대학들이 영어 강의에 몰입하는 배경이 짐작된다. 전 세계 인구의 8%만이 영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지만 인터넷 정보의 약 70%가 영어로 돼 있다. 국제과학논문색인(SCI) 등재 저널 수의 73%, 국제사회과학논문색인(SSCI) 등재 저널 수의 85%가 영어권이다.

심지어 지난해 뉴스위크가 세계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결과 100위권 대학 중 영어권에 속한 대학이 75개에 이른다. 그런 대학에서 공부하려는 한국인도 크게 늘었다. 그 결과 2004~2005년 2년간 세계 토플 응시인원 55만4842명 중 한국인이 10만2340명(18.5%)으로 가장 많다.

대학의 위상 강화에도 영어 강의는 중요하다. 영국의 더 타임스나 한국의 중앙일보 등 국내외 대학 평가기관들은 외국인 교수·학생 비율, 영어 강의 비율을 대학경쟁력 평가의 주요 지수로 삼기 시작했다. 서울대의 외국인 전임교수가 고려대(70명)·연세대(60명)에 비해 크게 적은 10명에 불과해 세간의 화제가 됐다.

외국인 학생도 1140명으로 고려대 2318명, 연세대 1758명보다 많이 뒤떨어진다. 서울대의 국제화가 내실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국내 대학의 영어 강의가 얼마나 효율적이냐는 문제는 객관적으로 검증이 안 됐다. 대학 영어 강의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으로 비용 대비 효과를 차분하게 따져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부 대학정책과 이필남 사무관은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그런 세부적인 연구자료는 없다”고 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유현숙 박사도 “대학 영어 강의 효율성은 연구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영어 강의를 선도하는 카이스트도 영어 강의 효과를 정밀하게 측정해보지 않았다. 권혁상 카이스트 홍보국제처장은 “영어 강의 효과를 평가한 자료는 아직 없으며, 조만간 평가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영어 강의에 따르는 잠재적 이득(의사소통 능력 배양 등)과 잠재적 손실(전공 지식 부진 등)을 당국, 대학, 그리고 국책 연구소까지 어느 곳도 종합적으로 따져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적어도 “어려운 전공 지식을 영어로 강의할 때와 한국어로 강의할 때의 이해도와 학업성취도를 비교하는 연구는 필요하다”고 유현숙 박사는 강조했다.

고려대는 신임 교수들에게 모든 강의를 영어(원어)로 하게 했다. 이와 관련, 고대학보사는 지난해 3월 고대생 37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56%는 영어 강의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답했다. 불만족스러웠다는 학생의 42.5%는 “영어 수준이 너무 높아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영어 강의 의무화에도 응답자의 63.8%가 “학생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거부감을 내비쳤다. 그러니 영어 강의 자체를 못마땅하게 봐 온 교수 사이에서도 “학생을 볼모로 영어 연습을 해야 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유현숙 박사는 “수업 내용이 교수와 학생 사이를 충분히 오가지 못하고 넘어간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영어를 하는 교수나 학생 모두 충분히 토론할 정도의 영어 실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어 강의를 무작정 밀어붙일 듯했던 대학들도 멈칫하는 경우가 늘었다. 연세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2007년 영어 강의 비율을 35%까지 올리자는 의견이 힘을 얻었지만 올 들어서는 25%로 목표치를 하향 조정했다. 학생에게 영어 강의를 의무적으로 수강하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영어 강의 수강 의무화를 올 신입생부터 적용하자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일단 미뤄졌다. “2008년 혹은 2009년 신입생부터 영어 강의 의무 수강 제도를 적용할지 모른다”고 홍종화 교무처장은 말했다.

고려대도 이필상 총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일단 영어 강의 목표치를 낮췄다. 박노형 교무처장은 “2010년까지 영어 강의 비율을 60%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을 고쳐 50%선으로 조정했다”고 했다.

서울대도 주춤하긴 마찬가지다. 서울대 일각에서도 고려대나 카이스트처럼 영어 강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서울대는 영어 강의를 강제하지 않기로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를 의식하자면 영어 강의를 의무화해야지만 성급하게 추진할 사안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논의를 거듭할수록 영어 강의 문제의 본말이 뒤바뀌었다고 느꼈다.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 제대로 알고서 논의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집약됐다”고 양호환 서울대 교무부처장은 설명했다.

한국의 대학들은 영어 강의를 진행할 준비가 얼마나 됐을까? 뉴스위크 한국판은 국내 대학 영어교육학과 교수 20명에게 e-메일 설문조사를 벌였다(명단은 20쪽 참조). 영미권에서 유학한 교수들의 영어 강의가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10명은 아니라고 답했고 9명은 그렇다고 답했다.

적어도 영미권에서 학위를 받은 교수들은 누구나 영어 강의를 무리없이 해내지 않겠느냐는 국민 일반의 통념과는 궤를 달리한다. 영어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의 절반 정도가 영미권 유학파 교수의 영어 강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박사과정의 장원준씨는 대학원 학생회 집행부 자격으로 뉴스위크 한국판의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영어 수업을 하자면 아예 화끈하게 밀어붙여야 하니 학교 측의 방침에 공감하는 편이다.

외국인을 대할 때 자신감이 생기고 의사소통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수업 이해도보다는 영어 이해도가 성적을 좌우하게 된다면 잘못이라고 많은 학생이 생각한다.” 학과의 전문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영어가 안 되면 발표도 못하고, 리포트 제출도 어렵고 결국 손해 보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사정이 또 다르다. 대학원생들은 자신이 잘 아는 전공분야를 영어로 듣기 때문에 수업을 따라가는 데 부담이 적다. 외국 학회에 참석하거나 영어로 발표할 일도 더러 있어 영어의 필요성을 많이 느낀다. 반면 학부생들은 영어가 당장 필요하지 않은 미래의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영어가 주는 부담감에 불만을 느끼기 쉽다.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이병민 교수는 대학원에서 2년째 영어로 강의를 해왔다. 한번은 수강생의 절반이 외국인인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학기 초반부터 수업 분위기가 외국 학생 중심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한국 학생들은 비록 영어교육을 전공하지만 외국인에 비하면 회화 능력이 떨어진다.

수업의 주도권이 외국인에게 넘어갔고 한국 학생들은 토론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말았다. 이 교수는 “영어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영어 집중교육이 유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영어 학습을 의무화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전공 지식을 희생하더라도 영어 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영어 강의를 해야 할까? 설문에 응한 20명의 교수 중 10명(50%)은 영어 강의가 지식전달 효과를 떨어뜨려서는 안 되며 그럴 경우엔 한국말로 하는 편이 낫다는 입장을 보였다. 5명은 그래도 영어 강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나머지 5명은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성애 (영어교육과) 부산대 교수는 “의사소통 능력은 상호 작용을 통해야 제대로 개발되며, 혼자서 일방적으로 떠드는 영어는 도움이 안 된다”고 대학 영어 강의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국 사람끼리 영어로 말하기가 부자연스럽고, 교수만 영어를 유창하게 해서는 학생들에게 유익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또 외국 경험이 전혀 없는 국내 학생들이 영어 강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깊이있는 강의가 이뤄질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양호환 서울대 교무부처장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역사교육과에 재직 중이다. 외국인 대상으로 영어 강의도 해봤다.

그는 “역사 강의를 영어로 하라면 표현 범위가 좁혀질 가능성이 있다. 또 난해한 이론은 영어로 설명하기가 부담스럽다. 이런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 교육의 절적 저하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영어 강의가 얼마나 잘 되느냐는 개인 역량에 달린 문제일 뿐, 영어 강의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다. 이들은 영어 강의가 불편하고 약간의 어려움도 없지 않으나 영어 강의가 학문의 질을 떨어뜨리는 등 장애를 준다는 얘기는 잘못됐다고 말한다.

우선 권오량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영어로 할 때 더 잘 이해되는 과목도 있는데 획일적으로 재단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서울대 백순근 (교육학)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교수 자신이 힘들다거나 학생들이 힘들다는 얘기와, 영어 강의가 갖는 학문적 성격은 별개다. 한국어로 강의하면 교수와 학생이 편하기는 하겠지만 영어로 한다 해서 손해 볼 일도 없다.

미국에서 다 영어로 학문을 하는데 영어로 한다고 그들이 어떤 불편을 겪느냐?” 어려우니까 도전할 만하고, 실제로 어려운 일을 대학이 성취했을 때 교육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능력이 되는 학교와 학생들부터 영어 강의를 하면 된다는 논리다. 김성애 교수와 양호환 처장이 영어 강의 만능주의의 후유증을 우려한다면, 권오량·백순근 교수는 영어 강의 차제가 갖는 순기능을 강조하는 셈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설문에 응한 교수들도 의견이 분분했다. 정연찬(영어교육과) 부산대 교수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없이 시행하는 영어 강의는 교수, 학생 모두에게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는 “영어 강의에 부동산처럼 거품 현상이 있는 듯하다”고 했다.

반면 같은 과의 김보현 교수는 “해외에 나가 무섭고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는 세계를 보면 국내 대학교수들이 얼마나 안이한지 알게 된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나라에 해를 입히고 있다. 모든 대학강의를 영어로 해야한다”고 강조할 정도다.

문제는 영어 강의를 진행하는 학교에서조차 강의의 효과를 100%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준거 기준이 없기 때문에 대학 내에 어떤 바람이 부느냐에 따라 영어 강의 정책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익명을 원한 카이스트 인문사회학부의 어느 교수는 “총장이나 학교의 정책당국자들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그때그때 정책이 달라진다”고 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학생만 그 틈새에서 희생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일본 국제기독교 대학에서 교육공학을 강의하는 정인성 교수는 “졸업할 때쯤 영어 구사 능력도, 전공 실력도 어설픈 학생을 누가 책임지겠는가”라며 학생들이 애꿎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요약하자면 한국 대학의 영어 강의는 주도하는 집단의 주관적 의지에 이끌려 진행되며, 시행착오에 따라 학생이나 교수들이 학문적으로 지불해야 할 비용이 얼마나 될지 미지수다. 그래서 찬반 양론이 거세게 맞붙는다. 하루빨리 대학의 영어 강의 확대 추진에 다수가 합의할 만한 최적의 방안이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교육부는 아직 이 문제에 무덤덤하다. 대학이 영어 강의 확대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만 바라볼 뿐이다. 영어 강의 때문에 파생될 학력 저하 같은 후유증을 최소화할 대책 마련은 전혀 없다. 그저 국제화를 하자면 영어 강의가 필요하고, 영어 강의 증가도 그 때문인데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이를테면 “교육효과가 충분치 않은데 교수들이 영어로 강의를 했겠느냐”는 식이다. 교육부 이필남 사무관은 “전공과목 영어 강의의 효율성은 각 대학이 시행과정에서 점검할 사안”이라고 말하는 정도다. 물론 학생과 교수의 수준이 학교마다 다른데 일률적으로 어떤 지침을 주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없지 않다.

하지만 입시 문제를 비롯, 사사건건 대학에 간섭하는 교육부가 영어 강의 확대 문제에서만 유독 대학의 자율을 강조하는 모습도 일견 무책임해 보인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국내 대학의 세계화 현주소

대학들이 영어 강의 확대에 나서는 이유는 대학의 국제화와 국제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제경쟁력이란 쉽게 말해 연구와 수업, 학사 운영, 외국인 학생·교수 유치와 교류 등 경쟁 분야별로 해외 유명 대학들과 견줘 뒤지지 않는 능력을 말한다.

이 중 영어 강의는 외국인 교수, 학생 유치에 관건적 요소다. OECD 통계(Education at a Glance·2005)에 따르면 국내 대학의 총 재적 학생 수 대비 외국인 학생 비율은 0.2%로 OECD 국가(평균 6.4%) 중 최하위권이다.

2005년 현재 국내 대학 전체 교수 6만6862명 중 외국인 교수는 2131명으로 3.2%에 불과하다. 한국 대학이 외국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찾아오는 교수와 학생들도 외국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7월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 11개 부처가 마련한 ‘고등교육의 국제화 전략’도 우수한 해외의 교수·학생을 많이 유치해 국내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게 주요 골자다.

국경없는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고등교육 기관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외국 고등교육 기관과의 내실있는 교류·협력이 필연적이라고 정부는 강조한다. 한국 학생의 해외유학 급증으로 유학·연수 수지는 매년 악화됐다(17쪽 참조). 외국인 학생이 많이 올수록 국제수지도 개선된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국내 대학도 신입생 미충원 사례가 속출하게 된다. 국내 고교 졸업자는 2005년 57만 명에서 2013년까지는 63만 명으로 증가하지만 2020년께는 49만 명으로 급감하리라 예상된다. 2005년 대학 신입생 미충원율도 전체 정원의 8.9%에 달했다.

특히 전남(33.9%), 강원(21.5%), 광주(19.8%) 등 지방 군소 대학으로 갈수록 심각하다. 그렇다면 유휴 대학 교육시설을 활용하고 신입생을 확보하려면 해외 학생을 많이 데려와야 한다.

교육부는 교수 채용 시 외국인 교수 비율을 확대하고 영어 수업능력을 임용 조건으로 제시토록 권장한다. 보다 파격적인 조치는 재정적 지원이다. 교육부는 정부 부처들이 대학 재정지원사업 평가 지표에 국제화 수준을 포함해서 평가하도록 유도한다.

이를테면 외국어 진행 강좌 비율, 외국인 교수 비율, 유학생 유치 실적, 교육과정 공동 운영, 학점·학생 교류 실적이 뛰어난 대학에 더 많은 돈을 준다는 말이다.

박성현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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