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시설 딸린 백제 공중화장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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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이 7세기 초부터 정화조와 하수도가 설치된 화장실을 썼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전북 익산시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에서 대형 화장실 세 곳(左)이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발견됐다고 12일 밝혔다. 삼국시대 화장실로는 처음인 데다 여러 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대규모라는 점이 특징이다. 화장실의 존재는 이미 학계에 알려졌으나 이번에 사진을 포함한 공식 보고서가 나왔다. 왕궁리는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재위기간 600~641년)대에 조성된 궁궐의 터다. 백제문화권 정비사업에 따라 1989년부터 지금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에 발표된 '왕궁리 발굴 중간보고 5'에 따르면 화장실은 긴 타원형 구덩이 모양이다. 큰 것은 깊이 3m, 폭 1.8m, 길이 10m(右)에 이른다. 화장실에서 중앙 배수로까지 작은 수로가 이어져 있다. 분뇨 탱크에서 흘러넘치는 액체 성분이 석축 배수로의 물에 섞여 성 밖으로 나가는 방식이다. 현대의 정화조와 유사하다.

연구소의 전용호 학예관은 "구덩이엔 폭 1m, 가로 1.7m 간격으로 나무 기둥이 박혔던 자리가 선명하다"며 "나무 기둥 사이에 진흙을 발라 분뇨 탱크를 만들었으며 기둥 위로 나무판을 놓아 용변을 보는 발판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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