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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잘못 쓰이는 경우 많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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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올 들어 두 차례 지방의회 의원 선거과정에서 후보들의 전과 사실이 사회문제가 되고 일부 후보는 등록이 무효화됐다.
최근엔 학력을 속인 기초의원 2명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앞으로 유죄가 확정될 경우 당선이 무효화될 상황에 놓여있다.
또 지난해 11월엔 인천의 폭력조직 「꼴망파」두목 수사과정에서 전과 누락사건으로 큰 물의를 빚기도 했었다.
그러나 범죄세계에서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예사로 쓰는 용어인 「전과」는 그 사용빈도에 비해 잘못 쓰여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과자에 대한 눈길이 곱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전과가 아닌 것을 전과로 치부, 「전과자」운운하는 것은 일종의 언어폭력이며 피해 당사자에겐 엄청난 명예훼손이 된다는 점에서 전과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과= 법률용어상의 전과는 「형의 선고를 받아 그 재판이 확정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전과 3범이란 어떤 범죄로 세 번 입건·기소돼 재판을 통해 세 번 형의 선고가 확정됐다는 뜻이다. 「형의 선고」에는 사형부터 징역·금고(금고)·자격정지·벌금 등이 포함된다.
전과와 혼돈되어 자주 사용되는 것이 바로 「범죄경력」이다.
누구든지 고소·고발을 당하거나 범죄 혐의자로 수사기관에 정식 인지되면 입건(Booking)이 되면서 경찰청 전산실에 입건사실이 기록된다.
그러나 입건이 됐더라도 수사결과에 따라 검찰이 무혐의·기소유예 등 불기소 처분을 내리게 되면 전과로 기록되지 않는다.
전과와 범죄경력은 용도와 미치는 영향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다.
전과는 인과응보의 차원에서 당사자의 공민권을 제한하는 공적인 효력을 갖는 반면 범죄경력은 수사기관의 내부용 수사자료에 불과하다.
또 전과는 법률이 정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효력이 소멸되고 당사자의 공민권은 회복되지만 경찰청 컴퓨터에 기록된 범죄경력은 무혐의 처분을 받더라도 지워지지 않고 계속 보관·관리돼 수사에 참고로 활용될 수 있다.
◇기록관리=A라는 사람이 사기혐의로 고소당한 경우를 가정해 전과와 범죄경력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해보자.
만약 A씨가 경찰의 조사를 받게될 경우 경찰은 관할 지방 검찰청 검사장 명의로 된 사건부에 A가 사기혐의로 고소 당했다는 것을 기재하는 것으로 A씨를 입건(Booking) 하게된다.
이 사건부는 사법경찰관이 자의적으로 입건하거나 입건된 사실을 사후에 삭제하는 부정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페이지마다 검사장의 간인(간인)이 찍혀 훼손이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경찰은 A의 신원이 확실할 경우는 양손의 엄지지문만을, 그렇지 않고 주민등록번호 등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으면 열 손가락 지문을 찍은 수사자료표를 만들어 경찰청에 보낸다.
이때부터 A씨가 사기혐의로 입건된 사실이 「범죄경력」조회용 컴퓨터에 입력되며 최종적으로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법원에서 유·무죄 판결을 받은 사실까지 모두 입력되게 되어 있다.
A씨가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징역·금고·자격정지 등을 선고받으면 A씨를 기소한 검찰청은 이 판결내용을 A씨의 본적지 시·군·구에 통고해 수형인명표에 기재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전과」다.
이처럼 본적지 수형인명표에 기재되는 것이 흔히 이야기하는 『호적에 빨간줄 긋는다』는 것이다.
본적지에 이 같은 유죄판결내용을 통고하는 것은 80년 제정된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한 것이며 84년 개정 전까지는 벌금형도 통고하도록 했으나 개정 후엔 자격정지 이상만 통고하도록 바뀌었다.
◇전과의 불이익과 삭제=전과에 따른 불이익은 크게 공민권의 제한과 누범자에 대한 가중처벌 두 가지.
현행 국회의원 선거법과 지방의회 의원 선거법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실효되지 않은 사람 ▲선거법 위반은 50만원(국회의원은 1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뒤 6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등은 피선거권이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징역형은 금고 이상에 해당하므로 전과사실로 남게되는 징역·금고·자격정지 등을 선고받은 사람은 형이 실효될 때까지 피선거권이 없다고 봐야 한다.
또 선거권의 제한도 피선권 제한규정과 비슷해 「전과」를 가진 사람은 일정기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와는 별도로 「전과」가 많은 사람은 법원이 형량을 정할 때 전과가 없는 사람보다 다소 높은 형량을 선고받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또한 「범죄경력」조회결과 여러 차례 사기·공갈 등으로 입건된 뒤 무혐의처분을 받은 사람이 그 후 다소의 실수로 사기 등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수사기관은 이 사람의 실수를 「고의」쪽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범죄경력」이 많은 것도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은 징역 또는 금고는 집행이 종료되거나 면제된 뒤 10년이 지나면 형이 실효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점= 범죄경력의 관리는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필요한 일이지만 터무니없는 고소·고발을 당해 입건된 뒤 무혐의처분을 받은 당사자는 입건된 사실 자체만으로도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어 범죄경력내용은 철저한 보안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 .
그런데 근래 일부 기업 등에서는 직원채용 때 응시자의 범죄경력을 편법으로 확인, 「위험인물」들을 탈락시키는데 악용하기도 해 논란을 빚고 있다.
본적지 시·군·구에서 발행하는 신원증명에는 전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사람도 범죄경력 조회에서는 사기·횡령·배임 등 단순고소사건이나 오래 전 학창시절의 시위전력 등 기업이 기피하는 범죄로 입건된 사실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기업들의 편법적 범죄경력조회 선호도는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경찰이 관리하고 있는 전과·범죄경력자는 모두 7백20여만 명. 전국민의 17%를 넘는다.
각종 범죄는 물론 고소·고발 등으로 전산망에 입력되는 범죄경력기록이 하루 평균 6천∼7천 건이다.
소속 경찰관 35명, 여직원 3백30명이 이 많은 자료를 관리한다.
특히 검찰·경찰의 기록관리가 입건사실은 신속히 입적되지만 무혐의 또는 유·무죄판결을 받았는지를 표시하는 「처분결과」는 법원·검찰·경찰청간의 업무연락 지연 등으로 제때 정리가 안 될 경우 「처분미상」으로 나타나 자칫 시급히 여권 등을 만들기 위해 신원조회를 신청했을 때 곤란을 겪는 수가 있다.
때문에 A씨는 검찰이나 법원에서 자기가 받은 처분이나 판결을 증명하는 서류를 받아 이를 곧바로 경찰청에 제출, 처분결과를 분명히 해두는 것도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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