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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집(중구필동2가)|정재훈(문화재 관리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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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우리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부서에 종사하다보니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저녁 한끼 대접하는데도 신경써야 하는 일이 생긴다.
나를 찾아온 손님은 인류학·미술사학·민속학·고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분들을 일본음식점·서양음식점·중국음식점으로 모시고 가기는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음식집을 찾게되는 것이다. 음식이라는 것이 민족적 개성이 가장 강하게 담겨 있는 생활문화이기 때문에 밥 한 그릇 먹는 것을 예사로 넘길 수 없다. 나는 사실 평상시에는 설렁탕·추어탕·불갈비를 좋아한다.
그러나 한국의 음식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한식집을 찾다 보면 그게 그리 흔하지 않다. 그래서 서울 남산 밑(대한극장 옆)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문화재 보호협회 산하 「한국의 집」을 찾게 된다. 1975년 멕시코 마야문명의 유적을 조사한 일이 있는데, 그때 보니 우리 신체 중에 가장 민족적인 부위가 혓바닥이었다.
그때 김치는 못 먹고 오랫동안 기름진 음식만 먹으니 내 몸의 균형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김치와 된장국이 그리도 먹고 싶어 환장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발효음식을 먹는 민족이다. 일본인은 회를 좋아한다. 중국인은 기름에 지글지글 튀긴 음식을 좋아한다.
「한국의 집」은 우선 한국민가의 아름다운 운치를 지니고 있다. 안채·사랑채·별당·후원 연못을 갖추고 우리 나라 살림집의 품위를 보여준다.
이 집의 음식은 궁중음식 보유자인 인간문화재 황혜성 씨가 정한 식단이다.
뷔페에는 밤·호박죽·잣죽·녹두죽·쇠고기완자·닭산적·냉국·갈비·잡채·증편·김치·꿀떡·식혜·수정과가 준비되어 있다.
가격은 점심이 1만6천5백원이고 저녁은 1만8천7백원이다. 음식의 격조에 비해 특별히 맘먹은 초대라면 그리 비싸지 않다.
한정식은 기본 김치종류와 구절판·산채나물·잣죽·인삼꿀·전유어·산적·신선로·꼬리찜·대하구이·송이볶음·전복구이·갈비구이·된장국·수정과·식혜·과일·법과가 나온다. 술은 국주인 문배주·두견주·경주법주다. 한정식은 세 종류가 있는데 3만원부터다.
그리고 민속극장이 있어 언제나 우리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 음식 맛이야 일품이다. 외국인들도 음식맛이 좋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한국의 집」에서 식사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알려온다. 나이 드신 우리 나라 어른들이 「한국의 집」음식이 제일이라고 한다.
음식은 그 나라를 상징하는 생활문화의 핵이기 때문에 한국음식의 품격을 맛보게 하는데는「한국의 집」만한 곳이 따로 없다. 은은한 한국음악이 깔리고 한국화가 걸려있는 실내에서 정갈한 백자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으며 정담을 나누는 것은 격이 있어 좋다. (266)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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