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희생자인가 공모자인가/확산되는 쿠데타 연루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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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옐친파들 “다음선거 위한 인기작전 쓴것”/측근·각료가 모반… 정치적 책임 못면할듯
소련 강경보수파의 쿠데타 실패로 극적으로 회생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희생자인가 공범인가. 공모설을 처음 발설한 감사후르디아 그루지야 공화국 대통령은 고르바초프가 차기연방 대통령선거에 대비,자신의 인기도를 높이기위해 음모를 꾸민 것이라고 주장,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소련내,특히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 지지세력중에서 이에대한 의혹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고 진상조사특위 구성 또는 고르바초프 사임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CNN과의 회견에서 세계서양장기대회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도 『고르바초프가 이번 쿠데타에 관여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소련사회에 유명해진 소련의 TV기자 블라디미르 포즈네는 22일 프랑스의 한 라디오방송에서 「고르바초프공모설」에 동의하면서 그의 사임을 요구했다.
그는 『고르바초프는 이제 사임해야 한다. 그에 대한 재판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가 사임하는 것이 논리에 맞다』고 주장한뒤 『이제 국민들은 옐친을 원하고 있다. 만일 그가 소련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말로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나타냈다.
이번 사태가 고르바초프 자신이 임명한 측근 및 각료들에 의해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의 관여여부에 상관없이 일단의 정치적 책임을 면키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쿠데타 발생 직전,쿠데타가능성을 경고하고 사임한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 전 대통령 보좌관은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뒤 『고르바초프가 이런 반역자집단을 권력에 끌어들인 것은 그의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고르바초프는 이점에 대해 해명해야 할것』이라며 고르바초프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완전히 옐친편으로 돌아선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은 고르바초프에 대한 비난을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휴가를 떠났던 고르바초프의 「부주의」함을 우선 비난하고,다음과 같은 말로 그에 대한 의혹의 일단을 표출했다.
『이번 음모에 있어 고르바초프는 희생자지 교사자가 아니라고 믿고싶다.
왜냐하면 만일 후자의 경우가 사실이라면 그는 자기손으로 자신의 신체적·도덕적·정치적 사형판결문에 서명한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방지도자들은 소련내에 확산되고 있는 「고르바초프공모설」을 일축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그루지야공화국 대통령의 주장을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도 『성격에 비추어 도저히 그런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는 말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쿠데타관련설을 부인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은 쿠데타가 일어나기 1주일전 미국신문들에 기고한 「소련의 선의에 기대하지 말라」는 글에서 고르바초프가 직면한 어려움을 서술한 뒤 고르바초프의 운명에 대해 그가 쿠데타로 제거되거나,스스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거나,상징적인 국가원수로 전락하는 세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키신저는 이 기고문에서 그가 쿠데타를 스스로 일으킨다 하더라도 그의 집권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고르바초프가 상징적인 지도자 역할을 맡는 것이 가능성이 가장 많고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21일저녁 미 PBS방송 좌담프로에 나온 전직 KGB간부 4명은 두패로 나뉘어져 자작 쿠데타 가능성을 논의했는데 자작극으로 보는 토론자들은 고르바초프가 차기 연방대통령선거를 의식하고 자신의 인기를 위해 이같은 쿠데타를 스스로 연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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