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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동호인당에 성애당까지|정당들 ″우후죽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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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89년 혁명에 의한 동유럽 공산정권의 연쇄적 몰락은 동유럽인들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선물했다. 그러나 반세기가까이 지속된 공산독재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부족상태인 동유럽사람들은 그후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사실상 동유럽은 민주주의의 불모지였다. 동유럽국가 중 제2차세계대전전 민주주의를 경험한 나라는 체코슬로바키아뿐이었다.
체코슬로바키바는 1918년 민주공화정이 출범했으나 그후 나치독일 침략으로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준비 없이 받아들인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건전한 중산층 부재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진다.
현재 동유럽 각국엔 수많은 정당들이 난립, 정치활동에서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를 누리고 있다.
폴란드엔 현재 1백개 이상정당이 등록돼 있으며 이중엔 맥주동호인당·성애당이 들어있다. 지난해 3월 실시된 헝가리 총선엔 60개이상 정당이 참가했으며 루마니아엔 지금 2백개 정당이 활동중이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발행되는 가제타 비보르차지 부편집인 에르네스트 스칼스키씨는 공산정권 몰락 후 폴란드엔 각종 정파들이 우후죽순 식으로 난립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치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스칼스키씨는 특히 지난해겨울 대통령선거에서 무명인사였던 스타니슬라브 티민스키가 등장, 현실성 없는 공약들을 남발함으로써 많은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폴란드국민들의 취약한 정치의식을 우려한다.

<「시민포럼」 두조각>
폴란드 출신으로 캐나다에 건너가 사업에 성공한 티민스키는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포퓰리스트적 선거전략으로 레흐 바웬사대통령과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티민스키는 지난 3월 바르샤바에서 X당을 창당, 오는 10월 실시예정인 폴란드 사상최초의 자유총선에 대비해 은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당난립과 함께 또 다른 불안요소는 민주세력의 분열이다. 공산정권을 무너뜨리는데 힘을 합했던 그들이 집권 후 정치노선상 이견으로 갈라 선 것이다.
지난 2월23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시민포럼 전체회의는 시민포럼의 공식해산을 결의했다. 바츨라프 클라우스 당시 의장(현 재무장관)은 이를 「체코식 이혼」으로 표현했다.
이에 앞서 지난1월 시민포럼은 클라우스의장이 이끄는 주류파가 비주류파인 자유클럽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민포럼의 중도우파 정당으로 탈피를 결정했다.
주류파의 목표는 클라우스재무장관이 추진하는 급진경제개혁을 뒷받침할 강력한 정치적 기반 구축. 이에 대해 자유클럽은 주류파의 기도가 시민포럼 결성목적 위반이라고 반발, 분열이 불가피해졌다.
시민포럼은 8911월 체코벨벳혁명 당시 공산정권 타도를 목표로 모든 반공세력이한 우산아래 집결, 범 민주시민운동단체로 출발했다.

<경제개혁 짜고 대립>
그러나 지난해 6월 총서에서 시민포럼이 압승, 사실상직권당이 되면서 그 성격규정이 주요문제早 대두했다.
특히 새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개혁을 둘러싸고 주류·비주류가 대립했다.
주류는 서구식 시장경제로 이행하기 위해 비록 일시적 고통이 따르더라도 급진경제개혁을 추진해야한다는 입장임에 반해, 비주류는 경제개혁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배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이같은 대립된 주장은 자신들의 출신배경과 연결된다. 주류는 구공산관료 또는 테크너크랫(기술관료) 출신이 중심이 된 반면, 비주류는 과거 77헌장 그룹에 참가했던 반체제 지식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체코 외무성 공보실장 티보르 프리솔박사는 시민포럼분열의 불가피성을 지적하면서 현재 심각한 상태인 체코경제가 하루빨리 정상적인 시장경제로 자리잡기 위해선 클라우스 재무장관의 급진개혁노선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비주류는 시민포럼은 어디까지나 시민운동으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체코인들은 본래 정당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포럼은 창설 당시 시민운동으로서 그 순수성을 유지함이 본분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2월 시민포럼이 공식해산 된지 두달만인 지난 4월L일 시민포럼 우파는 북부 모라비아 올로무치에서 새로운 정당인 시민민주당(CDP)을 창당했다. CDP는 ▲시장경제이행 ▲사유재산제 ▲급진경제개혁지지를 선언했다.
당 지도자로 선출된 클라우스재무장관은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체코에 강력한 보수정당이 출현했음』을 선언하고,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 현재와 같은 급진경제개혁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CDP 창당에 이어 시민포럼 좌파들도 전열을 가다듬어 시민운동당(CM)을 창당함으로써 89년 체코 무혈혁명의 주역이었던 시민포럼은 완전히 양분됐다.
CDP와 CM은 그러나 결별에도 불구, 앞으로 협력행동시 시민포럼 명칭 공동사용, 시민포럼기금 창설 등에 협력하기로 하는 등 완전 관계단절은 선언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경제개혁 등 주요정책에서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양자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시민포럼의 분열과 함께 체코정정을 불안케하는 또 다른 요소는 슬로바키아의 분리 독립움직임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슬라브계인 체크·슬로바키아 양민족으로 구성된 연방공화국으로 10세기초 분열됐다가 제1차대전후인 1918년 한나라로 통일됐다.
그러나 인구수에서 체크인이 2대1로 앞설 뿐 아니라 정치·경제 등 모든 면에서 체크인중심으로 이뤄짐에 대한 불만이 항상 존재해왔다. 이러한 불만은 동유럽민주화 이후 불어닥친 민족주의의 거센 바람을 타고 점차 커졌다.

<자유노조 힘잃어>
특히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소재산업과 군수산업이 주요산업인 슬로바키아는 체크에 비해 기업 도산·실업 등 경제적 피해가 훨씬 커 고통을 받게됨으로써 민족적 차별에 대한 불만이 확대되고 있다.
연방정부 당국은 분리 독립을 원하는 슬로바키아인이 전체의 20%미만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으나, 분리·독립의 기수인 슬로바키아민족당이 최근 기세를 올림으로써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하벨대통령은 최근 분리 독립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국민투표 실시를 제안, 문제의 심각성을 나타낸 바 있다.
한편 폴란드에서도 민주세력은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동유럽민주화의 선구였던 자유노조는 분열된 지 오래다.
지난해 7월 친바웬사파는 중도동팽, 반바웬사파는 시민운동·민주행동(ROAD)을 각각 결성함으로써 완전 결별했다.
지난해 겨울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바웬사에게 패한 마조비예츠키전총리는 그 후 ROAD와 민주권리광장(FDR)을 통합, 민주동맹(DA)을 결성, 강력한 반바웬사진영을 구축하고 있다.
민주진영의 이같은 분열은 경제개혁정책을 과감히 추진해나가기 위해 강력한 정치기반을 필요로 하는 동유럽 각 국 신생정부들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더욱이 이 같은 분열이 그동안 신생 민주 정부릍 지원하면서 경제긴축 정책에 인내해오던 국민들을 실망시킴으로써 그들이 서서히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폴란드 자유노조 크라코프지부는 지난달 12일 89년9월 자유노조정부출범이후 처음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l시간동안 파업을 단행했으며, 기타 6개지역 자유노조지부들도 파업을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 2월 새 자유노조 위원장에 취임한 마리안 크르자크렘스키(4l)는 취임직후 자유노조가 정치단체에서 노동조합으로 전환, 노동자의 실제 생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선언했다.
자유노조의 이같은 노선전환은 최근 노동자들의 생활고에 대한 불만을 틈타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구관영노조 OPZZ에 대한 경계 때문이다.
최근 들어 자유노조는 약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반면 OPZZ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생활수준향상을 요구하는 반정부시위를 주도하면서 급격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30연대 상황같다〃>
조합원수에 있어서도 자유노조 2백30만명에 대해 OPZZ는 2백50만명으로 자유노조가 크게 열세에 있다.
따라서 이제 자유노조가 바웬사와 어느 정도 거리를 갖지 않을 경우 폴란드 노동계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리라는 위기감을 자유노조 지도부는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웬사대통령은 지난달 l2일 자유노조지도부와 만나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무정부상태를 막기 위해 법밖의 수단까지 사용하겠다』고 임금인상파업에 대해 경고하는 「독재자적 면모」를 보였다.
이에 대해 야당측은 바웬사대통령이 1920년대 독재자 요제프 필수츠키원수를 닮아가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 같은 불안한 정치상황에서 예상되는 것은 강력한 독재자 또는 선동주의 정치가의 출현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아틸라 포그교수는 현재상황을 30년대 동유럽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제1차 대전으로 독립한 동유럽국가들이 그 후 세계적 공황의 정치·경제적 혼란 속에서 차례로 파시스트정권으로 넘어갔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민주주의냐 아니면 새로운 독재출현이냐-. 50년 가까운 공산독재에서 벗어나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동유럽 민주주의가 가는 길은 험난하다. 글 정우량특파원 사진 신동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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