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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타임 리뷰] ① 10代 피아니스트 김선욱씨-KBS교향악단 협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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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가슴이 설레고 약간의 긴장감마저 감돈다.

8일 서울 여의도 KBS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새 얼굴'을 보기 위해 기대에 부푼 표정들이었다. 로비 기둥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포스터는 물론 곡목 해설이 수록된 월간'KBS 오케스트라'표지를 장식한 주인공은 지난해 영국 리즈 콩쿠르를 석권한 피아니스트 김선욱군이었다.

KBS 교향악단이 올해 시즌을 여는 첫 공연에서 그는 세계적인 콩쿠르 우승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음을 실제 연주로 유감없이 보여줬다.

김선욱은 무엇보다도 음악을 잘 들을 줄 안다. 협주곡에서 피아노가 독주 악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때로는 오케스트라의 한 악기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겸손의 미덕도 발휘한다. 어느 지점에서 마음 놓고 다리를 쭉 뻗고 자기 음악을 들려줘야 할지도 잘 아는 연주자다.

무엇보다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빠르게 연주하면 눈부신 연주 효과가 날 줄 뻔히 알면서도, 충분히 그만한 테크닉을 갖추었음에도, 도를 넘지 않는다.

속사포처럼 음표를 쏟아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음악의 내면 구조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0대 소년 같지 않은 거장의 풍모마저 느껴졌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황제'는 그리 만만한 곡은 아니다. 피아니스트가 연주 30분전 '프리 콘서트 토크'에 나와 말한 것처럼 청중들은 제5번 협주곡을 좋아하지만, 연주자들이 선호하는 것은 제4번 협주곡이다. '황제'는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곡이어서 웬만히 잘 연주하지 않으면 박수 받기도 어렵다. 하지만 '쉽지만 어려운 곡'에 과감한 도전한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황제 협주곡'에서 돋보인 것은 남성적이고 호탕한 포르테가 아니라 옥쟁반에 구슬이 구르듯 영롱하게 그려낸 스케일(음계) 연주였다. 그는 다양한 음색의 팔레트를 구사하는'화가'였다. 다채로운 색깔로 그려낸 음표들은 선율이 되고 화음이 되어 강물처럼 흘렀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1악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한 탓인지 뒤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여유있는 표정이었지만 3악장에서는 음악을 쫓아가기에 바빴다. 땀도 무척 흘렸다. 음악의 마라톤에서도 체력 안배가 중요한 법이다. 지휘자의 경험 부족 아니면 리허설 시간 부족 때문인지 오케스트라와의 호흡도 썩 훌륭하진 않았다.

이날 지휘대에 오른 가브리엘 펠츠(36.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 음악감독 )도 국내 데뷔 무대였다. 190㎝ 정도 되어 보이는 큰 키의 장점을 십분 발휘해 폭넓은 다이내믹을 구사했다. 음악의 디테일에 충실하다 보니 군데군데 음악의 흐름이 끊어지긴 했지만, 교과서적인 지휘 동작으로 관악 앙상블의 호흡 일치를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탄호이저 서곡''신세계 교향곡'등 흔히들 쉽게 연주하는 '스탠더드 레퍼토리'에서 '새로운 사운드'를 추구한 집요함에서 젊은 지휘자의 패기를 엿볼 수 있었다. KBS 교향악단은 같은 프로그램으로 9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글.사진=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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