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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라!논술테마] 익명의 의사표현은 기본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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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1--관련컴포넌트-->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한 여성 가수의 자살로 인터넷 이용자 사이에 자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 틈을 타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그러나 실명제 도입 주장에는 큰 오류가 있다. 인터넷 문화의 부작용이 오로지 익명성 때문에 생긴다고 보는 것이 그것이다.

악플의 주요 공간인 대형 포털 사이트는 이미 회원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 개인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토론방에서도 실명 확인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악플이 근절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악플이 익명성 때문으로만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터넷에서는 상대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사실 확인과 자기 검열 없이 즉흥적이고 일방적으로 생각을 쏟아놓는다. 여기에 끊임없는 퍼나르기가 이어져 한 사람의 악플은 전체의 악플로 확대 재생산되곤 한다.

인터넷 실명제는 이런 인터넷의 특성을 도외시하고 있다. 악플의 복잡한 구조를 무시한 채 사이버 폭력의 원인을 익명성에 전가하려고 한다는 얘기다.

악플이 사이버 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국가와 포털 사이트는 새로운 제도와 대책을 찾아야 한다. 익명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는 기본권에 해당한다. 미국 독립 과정에서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의 압제에 익명의 팸플릿으로 저항하며 대중을 일깨우고 새 국가의 미래를 토론해 나갈 수 있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 대학가에도 이어져 거대 권력에 저항하는 개인이 익명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익명성은 미약한 개인이 잘못된 국가 권력이나 다수의 폭력에 저항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선한 목적을 갖고 있지만 잘못된 제도다.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표현의 자유가 희생돼선 안 된다.

한상희 교수(건국대.법학)

☞생각 플러스:인터넷 실명제 도입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작용을 생각해 보고, 그것을 막기 위한 대안을 찾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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