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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쌉싸름한 '사랑의 맛'

중앙일보

입력

초콜릿은 마법사다. 연인들의 사랑 고백도 들어주고, 우울할 땐 기분도 달래준다. 맛은 또 어떤가? 쌉싸래한 맛을 느끼려는 순간 달콤함으로 감싸주고, 단단한가 싶으면 어느새 혀끝에서 녹아 촉촉해진다. 단 몇 초 만에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초콜릿, 그 양면성을 들춰보고자 한다.

"뭐가 보이세요?"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원형의 룰렛을 가리키며 여자 아이가 묻는다. 한동안 회오리치는 그림을 삼킬 듯이 쳐다보던 여인이 대답한다. "말을 탄 여인." 그러자 비안느(줄리엣 비노쉬)는 "당신은 약간 톡 쏘는 맛의 페퍼민트 초콜릿"이라며 자그마한 봉투를 내민다. 영화 '초콜릿'의 장면이다. 북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빨간 망토를 뒤집어 쓴 비안느가 어린 딸을 데리고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들어온다. 그들은 곧바로 가게를 얻어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딱딱한 열매 같은 것을 빻고 문지르는 것이 마을 사람들에겐 낯설게만 느껴졌다. 더구나 가톨릭 마을에서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있으니, 급기야 마을 시장은 그들을 내쫓으려고 마음먹는다.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건 초콜릿 가게 오픈이 때마침 사순절 금식 기간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바게트 한쪽 먹지 못하는 이들에게 초콜릿의 유혹은 가장 큰 형벌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둘씩 맛을 보기 시작했고, 내면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악마의 먹거리가 아닌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홀로 사는 노인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해골이나 죽음 등의 흉측한 그림만 그리던 소년에게 사랑의 충만함을 일깨워줬다. 이처럼 초콜릿은 묘한 마력을 지녔다.

초콜릿의 매력은 상반된 양면성에 있다. 외모에서도 드러나듯 겉으로 봐선 시커멓고 단단한 것이 남성적인 카리스마를 풍기는 것 같지만, 입 안에 가져가면 사르르 녹는 부드러움이 여성의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초콜릿은 남성이다. 적어도 언어학에서만큼은 그렇다. 모든 명사를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프랑스어에서 초콜릿은 'le chocolat', 즉 남성을 가리킨다. 어쩌면 초콜릿을 소비하는 고객층이 대다수 여자라는 사실 또한 우주의 이치와 맞아떨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초콜릿은 건강과도 밀접하다. 흔히 코코아라고 부르는 거품이 풍부한 이 따뜻한 음료는 영양학 측면에서 보자면 마그네슘과 철 등이 함유된 강장제다. 반면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예로부터 감기약이나 소화제로 쓰인 민간처방요법이기도 하다. 최근엔 초콜릿에 함유된 페닐에틸아민이라는 성분이 우울성 신경증세를 완화하는데 효과적이라는 보고까지 나온 상태다. 헤어진 여인들이 항상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에 힘을 싣는 얘기다.

말이 나왔으니 얘긴데, 초콜릿에 거의 광적으로 집착하다시피 지낸 여인들은 과거부터 존재해왔다. 카카오의 맛을 처음으로 전파한 스페인 공주들을 비롯한, 루이 15세의 애첩인 마담 드 퐁파두르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들 수 있다. 여성 못지 않게 초콜릿과 동고동락한 남성들도 있다. 그중에는 성욕 촉진제로 애용했던 인물들도 포함되는데, '사랑의 묘약'이라 부르며 샴페인 대신 초콜릿을 마신 카사노바가 대표적이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자신의 침실로 끌어들이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이 감언이설도 아니요, 준수한 외모도 아니요, 바로 이 신비한 초콜릿이었을 게다. 최음제의 효력은 카카오 음료를 마시기 시작한 아즈텍 문명 때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다. 인디언들은 성감대에 카카오 끓인 물을 발라 몸에 받는 키스를 더욱 감미롭게 했을 정도. 사도 마조히즘이란 단어로 친숙한 사드 후작도 예외는 아니다. 초콜릿의 도발적인 본성은 영화 '초콜릿'에서도 묘사된다. 과테말라 코코넛을 우적우적 씹어먹은 남편이 정력을 되찾음으로써 소원했던 부부 사이가 다시금 끈적끈적해진다. 초콜릿이 비너스의 열정을 깨운 것이다.

푸드 칼럼니스트 이인나는 초콜릿의 이중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초콜릿은 의외성을 가진 사람(?)이다. 냉철한 모습으로 비즈니스에 임하다가도 옆 사람이 델 정도의 열정과 흥분을 보여주는 누군가처럼 말이다. 둘 중 어느 모습이 진짜냐고 묻는 것은 부질없다. 왜냐면 둘 다 진짜니까. 마음의 치유제든 성적 흥분제든, 초콜릿은 내게 있어 언제나 이중적인 진짜다."

프리미엄 김혜영 기자 hyeyeong@joongang.co.kr

참고 서적= 살림지식총서 '초콜릿 이야기',창해ABC북 '초콜릿'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랑한 초콜릿, 드보브 에 갈레

프랑스 왕실의 공식 납품 업체로 인정받은 로열 브랜드다. 양질의 카카오, 다양한 원료들의 섬세한 결합, 설탕 함유량의 최소화, 첨가제의 배제, 높은 수준의 제조공정 등이 그 비결이다. 카카오에 관한 논문을 펴낼 만큼 원료 연구에 매진하고, 제조법 연구와 신기술 개발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카카오 본연의 맛을 저하하지 않는 분쇄 방식과 우유 저온건조 락토린 공법 등을 개발해 지금까지 널리 이용하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즐겨 먹던 초콜릿은 60% 카카오 베이스에 커피나 바닐라, 시나몬 등 각기 다른 성분의 첨가물을 넣은 것으로, 주화처럼 생긴 납작한 원판 모형의 초콜릿을 직접 청담동에서 만날 수 있다. 문의 02-3446-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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