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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무전관광객 홍수로 파리 “몸살”(지구촌화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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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시즌맞아 하루평균 2,000∼3,000명… 대부분 노숙/취업노려 아예 눌러앉는 사례도 많아 골칫거리로
파리가 동유럽에서 쏟아져 들어가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40여년동안 갇혀지내오다 여행의 자유를 되찾은 동유럽 사람들이 앞다투어 파리구경길에 나섬으로써 파리전체가 동유럽 관광객들의 거대한 야영장으로 변하고 있다.
돈이 없어 호텔에서 잘 처지가 못되는 이들 동유럽 사람들은 발길닿는 곳을 잠자리삼아 아무데서나 노숙하는가 하면 취업의 기회를 노리며 아예 눌러앉는 사례가 속출,프랑스 정부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관광성수기인 요즈음 파리를 찾는 동유럽 관광객수는 줄잡아 하루평균 2천∼3천명선.
대부분 20대 전후의 젊은 관광객들인 이들은 동유럽 각지에서 출발하는 단체관광버스를 타고 꿈에도 그리던 파리관광길에 오른다. 에어컨이나 화장실 등 편의시설 하나없는 허름한 버스에 짐짝처럼 실려 버스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힙겹게 파리에 도착한 이들은 파리에 와서도 감히 호텔에 들 엄두를 못낸다. 파리호텔의 하루숙박료가 보통 이들의 한달봉급과 맞먹기 때문이다.
그나마 좀 사정이 나은 사람들은 유스호스텔등 값싼 숙박시설을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버스안에서 새우잠을 자거나 노숙하는게 보통이다. 이에 따라 파리시내 에펠탑주변 관광버스 주차장은 밤마다 폴란드·체코·유고·헝가리·루마니아 등 동유럽 각국에서 온 버스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아예 올때부터 텐트를 준비한 일부 관광객들은 불로뉴숲이나 뱅센숲 등에 천막을 치고 야영생활을 만끽(?)하기도 한다.
체코등에서는 「7박8일 파리캠핑투어」와 같이 아예 노숙을 전제로 한 관광상품이 등장,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이 파리에 와서 돈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아예 먹을 것까지 싸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없는 돈을 아껴 값싼 관광기념품을 산다거나 아랍이나 아프리카출신 이민들이 즐겨찾는 덤핑상가를 기웃거리는게 고작일 뿐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각국은 올들어 동유럽 사람들에게 여행의 문호를 활짝 열었다. 이들이 본국에서 여행의 자유를 되찾은 걸 계기로 서유럽 각국은 이들에게 비자면제혜택을 부여한 것.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3개월까지는 비자없이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게 됐다.
이들이 일본이나 한국관광객들처럼 돈을 뿌리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유럽인으로서 자유를 되찾은 이들의 방문을 환영한다는게 프랑스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이들 동유럽 관광인파를 환영할 수만은 없다는데 파리시와 프랑스정부의 말못할 고민이 있다.
이들이 여행만 마치고 바로 돌아가면 좋은데 그냥 눌러앉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정체류기간인 3개월을 넘겨서까지 귀국하지 않은채 불법이민대열에 합류함으로써 가뜩이나 심각한 외국이민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징후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불로뉴숲 한구석에는 이들 불법체류 동유럽 사람들이 모여사는 천막촌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들어 그 규모가 날로 번창하는 추세에 있지만 파리시 당국은 차마 단속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아직 프랑스에 온지 3개월이 안됐다고 이들이 잡아뗄 경우 단속할 근거도 없지만 모처럼 자유를 되찾아 이곳까지 온 그들을 야박하게 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설명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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