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정』으로 보는 것이 무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드디어 춘원의 최후가 밝혀졌다. 그동안 여러 주장속에 하나의 수수께끼가 된 문제가 풀린 셈이다.
그러나 춘원의 최후를 밝혀낸 중앙일보 7월26일자(일부지방 27일)기사에는 잘못이 보인다. 3면에 실린 이광수의 연보를 보면『1917년 최초의 단편「소년의 비애」「어린 벗에게」발표』라고 나와 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춘원은 1910년『소년』지 2,3,5월호에「어린 희생」이라는 번역인지, 창작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작품을 발표했고 역시 같은 해 3,4월『대한홍학보』에「무정」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매일신보에 발표된 장편「무정」과는 다르다. 이는 남편의 첩질로 본처가 음독자살한다는 내용의 단편소설이다).
「어린 희생」의 경우 번역인지 창작인지, 확실치 않으니 제외한다 해도「무정」이 최초의 단편소설이 되는 셈이다. 사실「어린 희생」은 1910년대에 춘원이 쓴 다른 소설들과 다른 점이 많다. 우선 다른 소설에 비해 꽉 짜여진 형식을 갖고 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 주제에서 다른 점이 확실하다.
다른 소설의 경우 대개는 춘원 자신으로 보이는 주인공의 심적 방황이나 아니면 사랑, 그것도 대개는 동성애가 아니면 근친애를 보여주는데「어린 희생」에서는 조국애를 고취하고 있다.
물론 춘원은 이외에도 1910년8월 남강 이승훈 선생을 모델로 한「헌신자」를, 1915년3월에는 자신의 이야기로 보이는「김경」을 발표했다.
하나의 의문거리였던 춘원의 최후를 밝힌 점에 대해서는 그 노고를 인정해야겠지만 이런 작은 실수로 인해 기자의 노력에 옥에 티가 되고 있다. 더욱이 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닌 이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 되므로 사실을 밝히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노정환 <서울서대문구천연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