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군포로, 국정조사권 발동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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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탈북 국군포로 전용일(全龍日.72)일병을 다룬 정부의 정책과 자세는 너무 통탄스럽다. 국방부와 국정원은 5개월 전에 全일병의 탈북사실을 확인하고도 방치했다. 노병이 위조여권을 사용, 귀환하려다 중국 경찰에 붙잡혀 문제가 되자 국방부는 지능적인 은폐공작을 벌였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주권국가에서 버젓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고도 국방부 장관이 무사하다니 이 아니 신기하지 않은가.

全일병이 누구인가. 22세의 청년은 꼭 50년 전 북한 침략군을 물리치기 위한 전투에서 분투하다 북한군의 포로가 됐던 영광스러운 국군이다. 그 잃어버린 50년, 공포와 회한의 50년을 뛰어넘어 죽음만이라도 고향에서 맞이하겠다는 일념으로 사선을 뚫고 탈출한 용감한 노병이다. 지금 북녘 땅에 살아있다는 국군포로 5백여명은 모두 全일병과 같다. 그런 노병의 귀환사실을 알고도 국방부와 국정원이 무시했다니 말문이 콱 막힌다.

어느 국방부 장관은 서해교전 전사자의 영결식장에 조문도 가지 않았다. 어느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인사(나중에 국방장관이 됐음)는 북송되는 비전향 장기수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하긴 그런 '전통의 국방부'인 만큼 50년 만의 국군포로 귀환이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 6월에 全일병의 탈북 및 국내 가족까지 확인하고도 어떻게 그를 방치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국방부는 이런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 외교통상부의 조회 과정에서 야기된 혼선만 서둘러 자인하는 사실조작 및 은폐 공작까지 벌였다. 너무 가증스럽지 않은가.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과 국정원 관계자를 문책하는 한편 국군포로 송환을 대북대화의 주의제로 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제2의 全일병을, 그로 인한 국민의 수치와 통분을 막을 수 있다. 국회가 국정조사권을 발동, 국군포로 귀환에 대한 진실을 파헤친 것을 토대로 종합대책을 세우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남의 나라는 전사자의 유골을 찾기 위해 거액을 쓰는데 우리는 살아서 스스로 귀환하는 영웅까지 타국의 범죄자로 만들었다. 너무 비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