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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영하 20도 속 얼음 축제 '하얼빈 빙등제'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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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가끔 인가의 불빛이 아롱거리지만 그저 동화속 집처럼 허상으로 보일 뿐이다. 대평원에 익숙지 않은지 금새 눈이 피곤해진다.

하얼빈에서 심야 열차를 탄 것은 1일 오후 8시7분. 11시간을 달려 다음날 새벽 중국의 최북단 오지인 헤이허(黑河)에 도착한다.
하얼빈 역사는 80여년 전 안중근 의사가 조국의 원수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영광의 자취를 어디론가 감췄는지 말이 없다,
52도 백주(白酒)에 취한 내 머리 안에서는 안중근의 두터운 손바닥 묵필 만이 혼돈스럽다.

2007년 1월의 중국 땅. 그리고 두 시간전 보았던 호화로운 하얼빈 빙등제(氷燈祭)의 현란한 불빛이 아른 거린다.
하얼빈의 밤 기온은 영하 20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10년 전보다 10도 정도 따뜻한 이상 난동이라고 한다. 하얼빈은 최고 추울 때는 영하 40도을 오르내렸다고 만도하얼빈에 근무하는 조선족 김순옥씨가 전한다. 다행히 우리 일행을 반기려 했는지 그동안 따뜻했던 하얼빈이 어제부터 떨어져 영하 25도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사진] 이순신과 거북선.이번 빙등제는 경기도와 함께 '한류'를 테마로 치러졌다. 헤이허=김태진 기자

올해 8회째를 맞는 빙등제는 말 그대로 얼음 조각 잔치다. 12월 초순 하얼빈을 가로지르는 송화강 물이 두께 1m로 얼어 붙으면 이 얼음을 큰 벽돌 크기로 잘라 각종 건축물을 짓는다. 특이한 것은 얼음 안에 알록달록 형광등을 넣어 밤만 되면 묘한 야경을 선사한다.

빙등제에 앞서 준비물을 점검했다. 신발 안에 털이 달린 하얼빈제 구두, 장갑, 그리고 귀마개와 모자가 그것이다. 내복은 물론 두꺼운 파카를 단단히 챙겨 입어야 한다.

경기도와 교류를 하는 하얼빈은 올해 빙등제 테마로 한류(韓流)를 정했다. 40만평 규모에 수 백개의 얼음 건축물이 늘어 서 있다. 조각에 사용된 얼음은 무려 40억 입방미터(㎥)에 달한다나.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하지만 우선 중국인들의 스케일에 놀랄 정도다.

▶[사진]하얼빈 빙등제의 상징인 가장 높은 40m 탑. 헤이허=김태진 기자

150위안(약 2만원)을 내고 입장을 하면 오른쪽에 익숙한 조각을 볼 수 있다. 경복궁 경회루와 석가탑이 그것이다. 그 앞에는 얼음 조각으로 된 10m크기의 안중근 의사 동상을 볼 수 있다. 동상 안에는 안의사의 의거를 기록한 설명과 영정 사진이 걸려 있다.
처음 5분간은 참을 만 했다. 하얼빈에서 구입한 털이 안에 달린 신발과 귀마개, 장갑과 내복으로 무장했지만 별 소용이 없다. 바람까지 살랑이는데다 온통 얼음바닥에 얼음 조각투성이라 체감 온도는 영하 25도를 넘어선다.

이번에는 중국의 유명한 궁전을 빼박은 얼음성에 올랐다. 높이가 30m라고 한다. 그 앞에는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높이 40m의 얼음탑이 자태를 뽐낸다. 이곳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환상적이다. 빙등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사진] 성에서 내려다본 빙등제 야경. 헤이허=김태진 기자

하지만 감탄도 잠시다. 이내 손발을 파고드는(이미 볼은 얼어붙었는지 말이 잘 안나온다) 추위에 30여분 만에 녹초가 돼 따뜻한 승용차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가장 힘든 것은 바닥 모두가 얼음이라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이거 장난이 아니다.

돌아가는 코스에 눈길을 끈 것은 얼음 미끄럼틀이다. 높이 10m의 얼음 미끄럼틀에 올라 바지를 썰매 삼아 내려오는 재미에 맛을 들인 행렬이 길게 늘어서있다. 저러다 엉덩이 다치면 우얄라고... 걱정 속에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사진] 빙등제 가이드를 맡은 중국 안내원. 큰 눈이 인상적이다. 헤이허=김태진 기자

앗! 낯익은 볼거리다. 현대차 아반떼를 얼음조각한 실물 크기 자동차다. 베이징현대차가 스폰서했는지 현대차 마크와 함께 베이징현대차에 대한 설명이 써 있다.얼음에 붙은 실물 타이어가 이채롭다.눈이 큰 빙등제 안내원과도 바이 바이다. 기념 사진 한 장. 하얼빈에 빙등제 마저 없었다면 더 추웠을 듯 싶다.

다시 열차안이다.
헤이허는 하얼빈에서 600㎞로 떨어진 중국의 최북단 오지다. 그 유명한 아무르강 건너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겨울만 되면 아무르강 물이 얼어 빙판으로 변하면 서로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있다. 물가가 싼 중국으로 러시아인들의 주말 쇼핑을 온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헤이허에 별도 비자없이 건너올 수 있다. 중국인들은 러시아에 갈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2일 오전 7시.11시간만에 헤이허에 도착했다. 아침 기온은 영하 30도. 냉동고보다 추운 기온이다.

하얼빈에서도 코안이 짜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외부 기온과 가장 먼저 접촉해 충격을 받는 곳이 코다. 만도 베이징연구소 모 종운 소장은 “코털에 남아 있는 수분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으며 코안이 찡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경험담을 들려준다.

헤이허는 연중 최저 기온이 영하 45도까지 떨어진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온다.
12월부터 3월까지 평균 밤 기온이 영하 30도 안팎이고, 낮 최고 기온도 보통 영하 15도 정도다.

인구 8만인 이 도시는 중국 최북단 오지지만 2003년 만도가 빙판 주행시험장을 만들면서 움츠린 겨울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다.
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만도는 2003년 여기에서 120만평의 우아니우(臥牛)호수를 연간 2억원을 내는 조건으로 50년간 임대했다. 빙판 주행시험장을 만들기 위해서다. 혹한기인 12월부터 3월까지 한시적으로 운행되는 20만평 규모의 빙판 주행시험장에는 타원형 서킷뿐 아니라 원형 및 1.8km의 직선주행로 등 8개의 코스를 만들었다. 시험장 부근에는 400평 규모의 2층 시험동 건물과 8500평 규모의 육상 시험장도 함께 건설했다.

만도 덕분에 올해부터 인터넷이 가능해진 유일한 3성급 국제호텔에서 간단히 씻고 오전 9시부터 시작될 빙판 주행테스트를 위해 호텔을 나섰다.

헤이허=김태진 기자 [tjkim@joongang.co.kr]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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