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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전달 체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주말에 야외로 나들이를 나간다. 오랜만의 나들이여서 꽤나 준비하고 길을 떠나지만 상쾌한 기분은 잠깐뿐이다. 그럴듯한 유원지로 통하는 길마다 자동차가 장사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 마찬가지다.
이럴 때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불평이 있다. 웬 차가 이렇게 많고, 웬 사람이 이렇게 많으냐는 것이다. 자신과 자기 차도 혼잡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린 채 하는 말이다.
더 절실할 때도 많다. 출근길 지하철의 혼잡, 바쁜 약속시간에 맞추려고 애쓸 때 온통 승용차로 막혀버린 시가지를 바라보면서 웬 차, 또는 웬 사람이 이렇게 많으냐고 불평하게 된다. 자신도 그 혼잡의 한 원인이 되면서도 말이다. 지하철을 늘리고 도로를 더 뚫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는 것을 다 알지만 단기간에 실천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것보다 정말 더 절실하게 당황할 때가 있다. 응급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시내에서 꼼짝 못하는 경우다. 아무리 경적을 울려보았자 비켜주지 않고, 또 앞차가 비켜 주려해도 비켜줄 자리가 없다. 환자의 상태는 점점 나빠 가는데 길은 뚫리지 않는다. 정말 기가 막히는 상황이다. 겨우 길을 뚫어 응급실에 .도착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큰 병원마다 응급실은 이미 환자로 가득 차버린 것이다. 외래진료도 마찬가지다. 외래환자로 가득 찬 대기실을 볼 때마다 웬 환자가 이렇게 많으냐고 환자들끼리 불평하게 된다.
이렇게 큰 병원마다 혼잡도가 높은 것은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작된 후 의료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것에 비해 의료시설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이유의 하나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는 가벼운 질병이 의심될 때도 큰 병원을 찾는 소위 대학병원 선호현상이다. 가벼운 질병은 동네 의원에서, 또는 가까운 병원에서 충분히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큰 종합병원·대학병원을 찾기 때문에 중환자나 그 가족들이 발을 구르게되는 것이다. 단순한 감기나 소화불량환자까지 편안히 진료 받을 수 있도록 대학병원 또는 큰 종합병원의 시설을 늘리기는 어렵다. 국민복지를 위해 의료시설은 계속 확충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환자 측에서는 정부가 수립, 추진하고 있는 의료전달체계에 협조해주어야 한다. 가벼운 질병은 가까운 의원 또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더 큰 병원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큰 종합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필요하다. 후일 자신이 급할 때를 생각해서라도 좀 덜 급할 때엔 가까운 의료기관을 이용해달라는 의료전달체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협조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서정돈교수<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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