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개혁-인력 수급 불균형이 걸림돌|ILO, 소 시장 경제 전환 문제 진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시장 경제로의 탈바꿈을 이루려하는 소련이 넘어야 할 산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내것」에 대한 생각과 제도를 뿌리내리게 하는 일, 「물건 값」이 시장에서 다 스스로 매겨지게 하는 일, 루블화의 제값을 찾아주는 일등이 그간 실제로 닥친 「높은 산」들이다.
여기에 최근 국제노동기구 (ILO)는 소련 노동자들의 임금 체계를 새로 바꾸고 거기에 맞춰 각자가 쉽게 일자리를 바꿀 수 있게 하는 노동인력시장을 만들지 않고서는 소련의 경제 개혁은 어렵다는 줄거리의 보고 책자를 내놓아 또 하나의 큰 문제를 들춰내고 있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줄여 옮긴 내용에 따르면 지난 70여년 동안 쌓여온 소련 노동 인력 수급의 문제는 크게 보아 ▲임금이 생산성에 따라 정해지지 않는 등 임금 체계가 잘못돼 있고 ▲주택·후생 복지 등의 제도가 쉽사리 직장을 옮길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 등 두가지로 요약된다.
예컨대 소련의 단순 생산직 노동자가 같은 공장의 엔지니어나 다른 전문직 근로자보다 더 많은 봉급을 받는 일은 매우 흔하다.
또 컴퓨터·교육·의료·서비스·통신 등은 소련이 크게 뒤떨어져 있는 분야들인데 이들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월급은 가장 「밑바닥」 수준이다.
이같은 임금 체계를 그대로 놓아두고서는 「더 열심히 일하고 배워 더 생산적인 일자리를 찾도록 하는」 개혁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소련 노동자들이 쉽사리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어디에 무슨 일이 있는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인 탓도 크지만 그보다는 아직도 다른 도시로 옮겨가려면 정부의 허가서가 있어야하고 대부분의 집들이 직장과 연계되어 배정되기 때문이다. 집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자리만 보고 옮겨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약 1억6천만명의 소련 노동자 가운데 매년 2천5백만명 정도가 일자리를 옮겼다는 통계가 있는 것을 보면 언뜻 매우 활발한 일자리 찾기가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대부분 한 동네의 이웃 공장에서 이웃 공장으로, 그것도 더 높은 임금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은 생필품 배정과 의료 서비스 등을 찾아 옮겨다니는 것이다.
최근 소련의 노동부도 「마땅한 대응」 없이 경제 개혁이 밀어 붙여지면 곧 2천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또 2년 안에 3천5백만명이 일자리를 옮기려 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ILO가 지적하는 대로 임금 체계를 비롯, 노동 인력 수급 체계를 바로 잡아야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7월1일부터 시행된 소련의 새로운 고용법은 인력 수급 체계를 개선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새 법에 따르면 실직한 노동자가 새 일자리를 찾지 못 할 때 처음 석달 동안은 종전의 월급을 그대로 받고, 다음 여섯달 동안은 각 공화국에 따라 다르긴 하나 최소한 종전 월급의 절반에 해당하는 실업 수당을 받게 되어 있다.
또 새 법은 직업훈련을 비롯, 일자리 찾는 것을 도와주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늘린다고 되어있으나 지난해 「이웃 공장」끼리가 아니라 공화국간에 주선된 일자리 찾기는 2천 건이 채 안 되는 실정이다.
지난 70년간 쌓여온 소련의 이같은 인력 수급 문제는 최근 인력난과 구직난을 함께 겪고있고, 또 임금 체계가 부분적으로 뒤틀리는 구석이 있는 우리로서도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는 일이다. <김수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