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2030의 '대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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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홍콩인들은 25일 출근 길의 지하철에서 조간 신문을 유심히 읽었다.

연예.스포츠.오락면이 아니라 구(區)의회 선거 결과를 보도한 정치면이었다.

조간 신문들은 '홍콩에 희망이 있다'(빈과일보),'구의회 선거는 정치 대지진'(명보) 등의 큼직한 헤드라인을 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선거는 친중(親中)세력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홍콩인들은 행정수반 직선 등 민주 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들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민주당은 1백20명의 후보를 내 95명이 당선됐고, 민협(民協).전선(前線) 등 민주파 후보들의 당선율은 평균 60%를 넘었다.

반면 친중 세력을 대표하는 민건련(民建聯.현 의석 83석)은 2백6명의 후보를 내 고작 62명이 당선됐다.

지난 7월 홍콩판 국가보안법의 입법 시도에 맞서 50만명이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를 벌였던 민심이 다시 분출한 것이다.

남녀의 성(性)대결에다 '소장 대 노장','민주 대 민생'의 대립 구도 아래 최대 격전을 벌였던 관룽(觀龍)선거구에선 30대 후반의 허수이란(何秀蘭.전선)후보가 60대의 민건련 부주석을 64표 차로 꺾었다.

이변의 불씨는 젊은층이었다. 투표일(23일)이 휴일인 데다 날씨까지 화창했으나 20~30대들이 투표장으로 향했다.

웨딩 드레스 차림으로 투표한 신혼부부, 졸업사진 촬영을 미룬 대학생들까지 있었다. 덕분에 투표율은 1982년 이후 최고인 44%(99년 35.8%)를 기록했다.

민주당의 양썬(楊森)주석은 "베이징(北京)이 민주화의 물결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명백히 인식하기 바란다"고 일갈했다. 민주파들은 내년 9월 입법회 선거(전체 60석 중 30석만 직선)에서 이겨 행정수반 직선을 관철하겠다며 세 결집에 나섰다.

중국 지도부로선 비상이 걸렸다. 홍콩인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선거 직전 홍콩 경제를 부양하는 조치에다 중국의 첫번째 우주인(楊立偉)을 홍콩에 맨 먼저 보내는 성의까지 보였으나 약발이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식의 홍콩 관리가 한계를 드러낸 걸까.

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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