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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일 수교협상/명분보다 실리로간다/내달 북경서 회담재개의 배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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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은혜」문제 비켜가 북한자극 피해/북한 선뜻동의 「모종의 묵계」가능성
KAL기폭파범 김현희의 일어교육담당으로 북한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여인 「이은혜」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한·일본수교협상이 내달하순 북경에서 다시 열리게 됐다.
양측은 골치아픈 이은혜 문제를 『국교정상화의 중요의제가 아니다』는 이유로 일단 제쳐둔채 「외교관계 설정·배상문제협의」를 다루는 수교협상을 재개하자는데 일단 합의를 본 것으로 보인다.
일본외무성은 20일 회담재개사실을 발표하면서도 이은혜 문제에 대해 양국간에 어떤 타협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하지만 외무성 소식통은 이은혜 문제를 본회담과 달리 별도의 양국교섭단장회의에서 다룸으로써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분리방식」을 카드로 제시,북한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말 제3차 본회담 석상에서 『일본이 이 문제를 철회하고 사죄하지 않는한 다음교섭에는 응하지 않겠다』(전인철 북한대표)고 말한 사실에 비추어 북한측이 회담재개에 선뜻 동의 한데는 이밖에도 「회담전반에 걸친 모종의 묵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지도부는 지난 6월말 방일한 첸치천(전기침) 중국외교부장을 비롯,여러경로를 통해 가급적 연내에 북한·일본간 국교를 수립하고 싶다는 의사를 일본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또 3차회담결렬 이후 일본측이 요구해온 남북유엔동시가입,남북대화재개,핵사찰 문제등 외교적 걸림돌 제지에 「최대한 성의를 보인 만큼」(일본 외무성소식통)일본도 오래 시간을 끌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북한측에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일본은 『북한이 「테러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미국·일본과의 국교수립은 인정할 수 없다』는 한국정부의 「이의제기」에 마지 못해 이은혜 문제를 들고나온 측면도 있는 만큼 애당초 이를 큰 문제로 삼을 뜻은 없었던게 확실하다.
일본측은 다만 내외의 여론을 고려,이은혜 문제를 일단 회담에서 거론했다는 기록을 남기는데 만족하고 시간을 기다려 북한측과의 조기수교협상을 꾀하자는 속셈도 있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회담재개발표 타이밍은 3백46명에 이르는 대규모 일조우호촉진의원연맹 방북단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로 잡은 것도 주목할만하다.
26명의 국회의원을 빼면 대부분 지방의회 의원들로 구성된 일본최대의 친북한사절단은 민간레벨에서도 북한과의 조기수교를 바라고 있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외에 과시함으로써 북한·일본국교수립을 향한 분위기 조성을 큰 목적으로 하고 있다.
북한측은 지난달 24일 극비리에 북한노동당국제부 손일호 일본과장과 김일성의 전담통역 황철을 일본에 파견,가네마루(금환신)전부총리,다나베(전변성) 사회당부위원장과 접촉하는 한편 외무성 다니노(곡야작태랑) 아시아국장과 만나 『북한의 8월중 회담재개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받아 일본측도 야마모토(산본영이)수석사무관,고마키(소목휘부)아시아 경제연구소부장을 평양에 「휴가」형식으로 보내 『일본의 이은혜문제 타결방안과 배상액규모를 타진했다.
북한의 유엔가입신청(7월2일),남북총리회담제안(동월 11일),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핵사찰협정안합의(동월15일)등으로 일본측이 내세운 수교의 3대 전제조건이 해결을 본데다 이은혜 문제는 분리처리하게 됨으로써 이제는 「배상규모」「수교에 따른 협정절차」에 대한 합의만 남았기 때문이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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