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화홍문과 장안문, 종이에 먹펜, 36.5 X 50cm, 2007
현재의 화홍문과 장안문(왼쪽 위) 모습.
성문 앞에는 옹성(甕城)을 둘러 방어력을 한껏 높였습니다. 성의 일부가 튀어나온 치성(雉城)과 포루(砲樓)는 적에게 상당히 위협적이었을 겁니다. 성벽을 오르는 적을 옆에서 공격할 수 있으니까요.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한 노대(弩臺), 적을 살피기 위한 공심돈(空心墩) 등은 당시 혁신적인 전투 설비였습니다. 정조의 자랑거리였죠.
화성 공사 전체를 기록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의 치밀함도 놀랍습니다. 축성 계획과 조감도, 각 건물의 모양, 자재의 종류 및 수량과 비용, 22종 장인들의 이름, 일한 장소와 날짜, 급여 등이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거의 파괴된 화성을 제대로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화성성역의궤 덕분입니다.
화성은 미학적으로도 탁월합니다. 곳곳에 '선(線)의 아름다움'이 배어 있습니다. 성 안을 흐르는 강에도 멋진 수문을 만들었습니다. 북수문과 남수문이 있는데 북수문을 화홍문(華虹門)이라 합니다. '아름다운 무지개 문'이란 뜻이죠. 현판의 글씨도 보기 드문 명필입니다. 옆 언덕 위 방화수류정과 함께 화성 최고의 볼거리로 손꼽습니다.
1800년대 말의 흐릿한 사진을 바탕으로 화성성역의궤를 참고해 복원도를 만들었습니다. 화홍문 뒤편의 아름다운 노송이 눈길을 사로잡고, 장안문 앞의 초가집들이 정겹습니다.
김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