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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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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폭로가 성스러운 적이 있었다. 권력이 공포일 때였다. 공포심을 이겨내고 진실을 드러내는 폭로는 성스럽게 여겨졌다. 그때의 폭로는 용기였다.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라고 불렸던 폭로가 그랬다. 지금은 대학교수가 된 권인숙씨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다니다 제적된 스물두살의 꽃다운 여성이었다.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한 죄로 부천경찰서에 붙잡힌 그에게 짐승 같은 고문이 가해졌다. 고문 경찰관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그는 처음에 이를 감추려 했다. 가해자의 불법성을 고발하기 위해 자신의 아픈 상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권씨는 그러나 폭로를 선택했다. 당시 변호인단이 낸 고발장의 다음과 같은 대목이 그가 폭로를 선택한 이유다.

"최고학부까지 다닌 미혼의 피해 당사자가 몇차례나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극복하고 여성으로서의 앞길을 희생해서라도 그 같은 끔찍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혔다."(월간 '말', 86년 7월호)

폭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진실을 밝히는 시작일 뿐이다. 폭로보다 '폭로 이후'가 더 힘들다. 폭로는 어둠 속의 진실이 빛 가운데 환히 드러나는 데서 완성된다. 그때까지 진실 입증의 책임은 폭로자가 져야 한다. 적어도 그때, 80년대는 그랬다. 청와대와 안기부, 검찰과 경찰 등 모든 권력기관이 성고문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 했다."폭언.폭행만 있었고 성적 모욕은 없었다"고 발표한 검찰과의 투쟁을 거쳐 고문 경찰관에 대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낼 때까지 권씨는 만 2년간 인생을 건 투쟁을 벌여야 했다. 폭로의 힘은 자기를 거는 데서 나온다. 자기는 진실에만 내던질 수 있다. 체험한 진실이 아니라면 최소한 '진실일 것이라는 믿음'은 있어야 자기를 걸 수 있다.

얼마 전 '원조 폭로 전문가'인 정형근 의원이 자기 당 의원들의 설익은 행태에 "폭로에도 철학과 도덕이 있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요즘 한나라당의 폭로들은 성스럽긴커녕 우스꽝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절실하지 않고 진실을 입증하려는 책임감도 없어 보인다. 오죽하면 지도부가 돌아가면서 폭로거리를 나눠주고 있을까. 국회의원들이 헌법이 보장해준 면책특권을 점점 싸구려로 만드는 것 같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