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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교 영어교육 "효과 적고 부작용 많아"|95년 실시 결정 바람직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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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교육부가 95학년도부터 초등학교에 영어를 정규 선택과목으로 지정, 조기 교육키로 한데 대해 교육계에서 우려와 함께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현행 입시 위주 중·고교 영어 교육이 개선되지 않는 한 「10년 공부에 반벙어리」 상황은 달라지기 어려워 영어 조기교육은 불필요하게 교육 기간만 늘리는 셈이란 지적이다. 또한 영어 조기교육은 현재의 과잉 교육열을 감안할 때 필연적으로 「영어 과외 열병」을 유발, 사회 계층간 위화감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가치관이 성숙되지 않은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영어 교육은 외국 문화의 무비판적 수용으로 인한 문화사대주의에 젖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점에서 교육 관계자들은 『현재 특별 활동으로 시행되고 있는 영어 조기교육마저도 빨리 중단해야 하며 오히려 중·고교 영어 교육을 내실화 하는데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기 교육 효용성 논란=교육부는 『언어 학습은 어려서부터 가르칠수록 좋다는 이론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고 확언하고 있다.
이미 언어학자들이 『인간의 두뇌가 가장 유연할 때는 10세 이전이며 이때가 언어 습득의 최적기』라고 밝힌 바 있고 실제 이민세대를 봐도 어릴수록 외국어 습득이 빠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하대 박원 교수(영어교육)는 『외국어 교육에 특별히 효과적 시기는 없으며 오히려 지능·동기·적성 등이 중요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현재 외국어 조기교육에 대해서는 세계의 학계에서도 찬반 논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나마 찬성론도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환경」속에서 효과적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필리핀이나 싱가포르의 경우 영어를 조기교육하고 있으나 이는 「제2언어」로서의 영어환경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영어가 외국어로 그치는 상황에서는 영어교육이 교실수업으로만 끝나버리고 이를 실제 사용, 익숙해질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외부 언어 조건이 같은 상황에서 실험 결과 ▲18세의 학습자에게 1학기로 다룰 수 있는 외국어 교재가 14세에는 2학기, 12세에는 3학기가 걸리고 ▲대학생은 고교생 보다 2배, 10세 어린이보다 5배나 빨리 외국어를 학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우리나라 상황에서 영어 조기 교육은 교육 기간만 늘리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조기 과외 열병=「영어교사 모임」은 최근 발행된 『영어교육』에서 영어 조기교육은 반벙어리 영어교육의 치료제가 아니라 초등학교까지 영어교육 병을 확산하는 「과외 망국 병원균」이라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영어 조기 교육은 조기 과외 열풍을 부채질, 각종 변태적인 과외 및 유사 출판물·교재범람이 예상되며 이에 따른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또한 영어 과외를 받은 초등학생들이 정규 학교 수업에 대해 불신하게 되고 도 농간·빈부간 교육 기회 격차에 따른 사회계층간 위화감이 심화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영어교사 모임의 양미나 교사(서울 영림중)는 『초등학교 때 영어 교육을 받은 학생이 중학교에 진학한 뒤 단 한학기 정도만 성적이 좋았다』며 『이를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결국 초등학교에서의 영어 교육은 호기심 충족과 배타적 우월감에 기껏 발음 교정 차원으로 중·고교의 학습 과정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화사대주의=인하대 박교수는 『언어를 배우다 보면 자동적으로 외국 문화가 유입된다』며 『자기 나라문화를 바탕으로 한 가치관이 형성되기 이전 외국어 교육은 필연적으로 문화사대주의를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가 『문화적 가치관을 배제하고 생활 도구로서의 기능적 측면을 강조한다』고 했으나 문화를 배제한 언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문화부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백화점·문방구에 진열된 초등생 학습용품 2천 4백 20종과 특허청에 등록된 1천 6백 31종 등 모두 4천 51종의 학습용품 이름에서 순수 우리말은 10·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순수 외국어는 54·3%, 외래어 포함 외국어가 14·1%로 전체의 70% 가량이 외국어 계열로 돼 있는 등 「외국어 선호」가 중·고교생에 비해 초등생에 대단히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이는 전반적인 사회풍토 탓도 있지만 「우리 것」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 형성되지 못한 초등생들이기 때문에 쉽사리 수용·동화된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영어조기 교육이 『신 식민지적 간접 지배의 문화 침투를 자초, 주체의 혼란과 자기정체의 위기에 당면하게 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외국어 조기교육이 시행되는 나라, 즉 싱가포르·필리핀·캐나다 등은 옛날 식민지였고 현재도 영향권 아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기교육 선행 과제=서울대 이맹성 교수(영어교육)는 『무엇보다도 자질을 갖춘 교원 확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대학에서 양성되고 있는 중등교원들이 「영어를 잘 읽지만 능히 말하지는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초등생들은 회화가 중심이 되는데 이를 소화해낼 교원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으며 전문적인 교원 양성 코스가 필수적인데도 교육부가 교대에 증원·부전공 선택 등으로 교원의 수만 확보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빚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또한 적합한 교재 및 교습 방법이 연구·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초등생들이 「실험 모델」로 전락할 우려가 크며 현행 과밀 학급의 해소 없이는 그나마 어렵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의사 소통 영어 교육이 초·중·고·대학교에 연계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교육부 구상 및 추진 배경=교육부는 국제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위해 영어 조기 교육은 「더 늦출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는 주장이다.
세계 정보의 85%가 영어로 돼 있는 정보산업사회 상황에서 영어의 습득은 국제 경쟁력 강화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95년부터 현재의 특별 활동 교육 대신 정규 선택 과목으로 채택해 가르칠 방침이다.
초등 영어교육은 철저히 회화 위주로 운영하고 컴퓨터·한문과 함께 선택적으로 교육받게 한다는 계획이다.
가장 중요한 교원 확보는 필요한 3천 6백 명을 연차 확보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교대에 영어회화 교습을 늘리고 부전공제를 채택하기로 했다.
이는 전국 6천 3백 35개교(91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우선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1개교에 1명의 전담교사를 배치한 뒤 연차적으로 전 학교에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교육부 이진재 교육연수 장학관은 『영어 조기교육은 개인 복지 향상 및 국가 발전 차원』이라며 『가속화되고 있는 국제화·정보화 사회를 감안할 때 5년 후 실시하는 것도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종권·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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