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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Blog] '가족' 50만 명 불렀다, 달려라 달려 ~ 태권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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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실, 제가 놀랐습니다. 개봉에 앞서 태권브이를 본 것은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의 복원기념 시사회에서였습니다. 아니, 30년 전에도 봤으니까 '다시'봤다고 할까요. 그때의 반응으로는 이 같은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지요.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하는 주제가는 그대로였지만, 철이.영희.깡통로봇의 활약상(!)은 어른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것과 좀 달랐습니다. 그 사이 동서양 애니메이션을 두루 접하면서 한껏 높아진 눈에는 퍽 싱거웠다고나 할까요. 자연히 30, 40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는 장사가 되기 어려울 듯 보였습니다.

흥행의 원동력은 그런 예단 밖이었습니다. 태권브이의 판권을 소유한 (주)로보트태권브이의 관계자는 "극장에 비치한 가면 모양의 전단이 동날 정도로 어린이들의 관심이 높았다"고 말합니다. 이 작품을 기억하는 어른 관객이 아니라 그 어른들의 30년 전 눈높이로 즐기는 어린이 관객이 먼저 움직였다는 것이죠. 방송광고 역시 어린이 프로그램과 채널에 내보냈다고 합니다.

관람 소감 역시 어린이들의 만족도가 훨씬 높더군요. 이보다 연령이 높은 애니메이션 매니어 사이에서는 "일본 작품의 모방이다" "아니다" 하는 논쟁이 오히려 초점이 됐지요. 애니메이션 전문가 송락현씨는 "방학인데다 요즘 극장에서 보기 힘든 로봇물이라는 것도 어린 관객들에게 매력적"이라고 꼽습니다.

한 해 100편 가까이 제작되는 한국영화 가운데 어린이 눈높이의, 혹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관객을 겨냥한 작품은 별로 없습니다. 별별 다양한 기획을 내놓은 충무로에서도 가족영화는 아직 미개척지인 셈이지요. 지난 연말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관객 450만 명이 넘는 큰 성공을 거둔 이유도 비슷하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방학이라는, 그리고 가족관객이라는 수요의 힘이지요.

일주일 전 개봉한 이성강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도 20만 명 가까운 관객이 들었습니다. 태권브이가 양날개로 날 듯, 한국애니메이션의 과거와 현재가 극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풍경입니다. 충무로 전체가 다양한 세대의 입맛에 맞는 푸짐한 밥상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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