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동반정국의 “보폭조율”/노­김대중 대좌서 오고간 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내각제 않는다” 합의했지만 여운/“총선 4월에 실시를”/김/“조기논의는 부적절”/노/물밑 교감수위에 정가 촉각 집중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신민당총재는 16일 청와대에서 2시간15분간에 걸쳐 내각제·총선일정 등 국정 주요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큰 관심을 모았다.
이날 회담은 김총재가 문제를 제기하고 노대통령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겉으로 드러난 발표 보다 물밑 교감여부가 주목을 끌고 있다.
다음은 손주환 대통령 정무수석이 밝힌 대담요지.
◇내각제 개헌 ▲김=국민들 사이에선 내각제개헌이 완전히 포기됐는지,노대통령의 선언에도 불구,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최근 여당의원이 이를 다시 제기해 의혹은 크게 증폭됐습니다.
▲노=지난 5·28선언에서 밝힌 그대로입니다. 지금 국민대다수가 내각책임제를 원치않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내각제 개헌은 할 수 없을뿐 아니라 추진해서도 안된다는 나의 입장에 변함이 없습니다. 이 문제는 정치권 보다 국민의사가 더 중요하며 더 이상의 논의는 혼선만 초래할 뿐입니다.
▲김=국민이 원한다면 이를 실현시킬 것입니까.
▲노=김총재가 내각제개헌에 대한 청치권의 합의를 만들고 국민적 합일점을 먼저 찾도록 하십시오.
◇정치일정 ▲김=예측가능한 정치라는 측면에서 선거시기도 명확히 해줘야 합니다. 국회의원선거는 13대처럼 4월에 실시해야 합니다. 1월에 실시하면 국정에 무려 4개월간의 공백이 생기게 됩니다.
1월에 선거를 하면 5,6월의 단체장 선거·연말의 대통령선거와 합쳐 국민생활에 큰 지장을 주고 국력을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노=정부 여당으로서는 내년 선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구체적으로 검토한바 없습니다. 선거비용을 줄이고 국정운영의 부담을 더는 방향으로 일정을 잡는게 필요합니다.
선거일정의 조기논의는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고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아요. 총선시기와 단체장 선거는 법에 시행일정이 명기돼 있습니다.법에 정한 것 이상의 분명한 일정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선거제도 ▲김=선거구 문제도 확실히 해야합니다. 선거에 엄청난 돈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선거공영제를 실시,돈 안쓰는 선거를 해야 합니다. 선거공영비용은 국고지출이 주가 돼야 합니다.
▲노=선거구제도는 기본적으로 여야가 협의해 결정할 사항입니다. 다만 앞으로 중첩된 선거일정을 볼때 돈안쓰는 깨끗한 선거가 국민의 바람이고 국정부담을 줄이는 길이라는 점을 감안해 정치발전 차원에서 어떤 제도가 합리적인가를 논의할 때입니다.
중·대선거구로의 개정이든 현행 소선거구제의 보완이든 지금의 폐단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중지를 모아야 합니다.
◇정치자금법 ▲김=야당의 자금사정은 말로 표현키 어려울 정도로 어려운 지경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당을 운영하고 선거를 지원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이런 정치자금 독점은 대통령이 말한 여야의 동반자 관계는 커녕 야당의 존립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정치자금문제는 야당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정치자금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고보조액을 대폭 증액하고 선관위 기탁금제도를 없애거나 비지정기탁으로 해서 여당의 독점을 시정하는 방법 등을 강구해야 합니다. 야당에 실효성 없는 후원회제도보다는 익명으로 모금할 수 있는 「쿠퐁」 모금제도를 허용하고 당내의 특별당비모금을 정치자금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노=선거공영제의 확대를 위한 선거비용의 국고확대는 있을 수 있으나 정당운영자금 자체를 국고에서 보조하는 것은 위헌시비의 소지가 있습니다.
대폭 증액은 국민적 거부감을 초래할 우려도 있습니다. 다만 선거때는 국고지원금을 추가배분하는 문제를 검토토록 당에 지시했습니다.
◇지역감정해소 ▲김=지역감정이 제2의 천성으로 되는 위험한 상태입니다. 지역대립을 해소하려면 차별을 철폐해야 하며 정부인사·지역개발,그리고 인간적 차별을 철폐해야 합니다.
▲노=최근 실시된 두차례의 지방선거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인들이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인사·지역개발에 있어 나는 지역감정해소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고 앞으로도 인사정책의 균형이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남북정당교류 ▲김=우리당은 89년에 남북 정당교류를 제안한바 있고 대통령께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한 바 있으나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노=북한은 아직도 통일전선 구축차원에서 우리 정부를 제외한 특정단체나 개인과의 직접 접촉을 시도하고 있고 정당한 접촉도 이같은 차원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당간 접촉을 허용할 경우 남북 국회회담을 완전히 폐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북측은 정부창구를 유명무실화하는 등 통일정책 추진에 장애가 될 우려가 많습니다.
정당교류나 정치인의 교류는 매우 민감한 문제인 만큼 지금은 정당지도자들의 방북은 거론할 시기가 아니며 방북논의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평화의 시나 평화공원을 우리가 먼저 조성하는 문제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UR대책 ▲김=우리 정부는 대통령 방미전에 이미 각료급 협상을 통해 미국에 대해 농축산물 수입이라든가,기타 개방에 대해 상당한 양보를 한 것으로 생각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노=이번 부시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농축산물 개방에 대한 압력은 없었습니다. 쌀개방 문제는 지금까지의 입장을 고수하겠습니다.
◇대통령 당적이탈과 공천헌금수사 ▲김=대통령은 기회있을 때마다 다음 선거에서 공정한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고 이는 대단히 환영할 일입니다.
그러나 정치풍토와 현실에 비추어 대통령이 민자당에 남아 있거나 또는 여권인사들로만 내각을 구성하는 한 공정한 관리자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노=정국운영에 공정한 관리자·조정자로서 노력을 다하겠지만 국민에 대한 책임정치를 다하고 정당정치의 본질을 살리기 위해 민자당 당적이탈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치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공천헌금 관련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통해 그 내용을 국민에게 분명히 밝히는 것이 오히려 정치권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재야인사 석방문제 ▲김=평화적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노조와 농민운동 등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며 통일 논의와 교류를 대폭 허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구속중인 정치범은 석방해야 합니다. 옥중에는 1천5백명에 달하는 정치범이 있으며 그들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노=이는 정치적으로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법질서를 파괴한 형사범에 대해서는 공정한 재판에 따라 법적으로 처리돼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합의이고 민주주의 기본입니다.<김현일·문일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