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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한자학습길라잡이] ② 부수를 장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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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문(聞)자는 부수가 귀 이(耳)인데, 왜 문설주 각(閣)의 부수는 문 문(門)자죠? 부수를 쉽게 알 수는 없을까요?"

초등학생 조카의 질문이다. 부수 문제만 나오면 헷갈린다는 푸념도 종종 듣는다. 자음과 모음을 모르고는 한글을 이해할 수 없듯, 부수를 정복하지 못하고서는 한자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당장 자전(字典)에서 글자를 찾을 길도 없다. 한자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수를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

◆부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한자를 자전에서 찾는다고 하자. 수만 개의 글자를 무턱대고 찾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다. 소리 문자인 한글은 가나다순으로, 영어는 알파벳 순으로 찾으면 된다.

뜻글자인 한자는 어떡하면 좋을까. 고민 끝에 고안해 낸 것이 편방이 같은 글자끼리 모으는 것이었다. 편방이란 한자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의 글자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밝을 명(明)은 날 일(日)과 달 월(月)로 이루어졌고, 글자 자(字)는 집 면()과 아들 자(子)로 구성되었다. 이때 日, 月, , 子 하나하나를 편방(偏旁)이라 부른다.

중국의 허신이 같은 편방을 갖는 글자들을 모아 540개로 분류하여 부수자를 만들었다. 즉 나무 목(木)이 들어있는 가지 가(柯), 책상 안(案), 지팡이 장(杖), 소나무 송(松) 등의 한자들을 같은 부류로 묶고, 이 한자들을 대표하는 목(木)을 부수로 삼은 것이다. 곧 부수(部首)란 한자들을 분류한 부분의 우두머리란 뜻이다. 오늘날엔 총 214개의 부수를 쓴다.

◆부수는 한자의 의미 부분= 한자의 음과 뜻을 찾으려면 부수가 필요하다. 자전은 부수가 같은 한자끼리 분류해 놓았으며, 획수가 작은 한자부터 큰 순서대로 배열했다. 자전의 맨 앞장과 뒷장에는 부수색인이 있다. 가령 마을 촌(村)의 음과 뜻을 알고 싶다면 먼저 부수인 목(木)이 자전의 몇 페이지에 있는지를 부수색인에서 확인해 찾는다. 그 페이지를 찾은 다음, 부수를 뺀 나머지 획수, 곧 3획에서 글자를 찾으면 된다.

그런데 어느 글자가 부수인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부수 위치는 글자를 쓰는 순서와 관계가 있다. 한자를 쓰는 순서의 기본 원칙은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깥쪽에서 안쪽 순으로 쓴다. 이에 따라 부수도 대체로 위쪽과 왼쪽, 바깥 쪽에 많다. 가령 붓 필(筆)은 위쪽의 대 죽(竹)이 부수자고, 쉴 휴(休)는 왼쪽의 사람 인(=人 )이 부수이며, 나라 국(國)은 큰 입구 국()이 부수자다. 그러나 예외가 많으며 편방이 셋 이상인 경우엔 더 자유롭다. 부수가 정확한지를 증명할 방법이 필요하다.

오늘날 자전의 기준이 된 '강희자전'에서는 글자의 의미에 근거해 부수를 세웠다. 따라서 한자의 의미에 해당하는 부분이 대체로 부수자다. 한자는 뜻을 맡는 부분이 부수자가 되고 나머지가 음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참 많다. 그 한자의 음이 아닌 쪽이 부수자일 확률이 큰 것이다. 예컨대 말씀 언(言)과 몸 기(己)로 이루어진 記는 발음이 '기'이고 뜻은 '기록하다'이다. 그렇다면 오른편의 기(己)가 음을, 왼쪽의 언(言)이 뜻의 역할을 맡은 것이다. 따라서 부수는 뜻에 해당하는 언(言)이 된다.

◆부수를 알면 한자 뜻이 보인다=부수의 뜻만 제대로 배우면 어지간한 한자는 그 의미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풀 초()가 부수자인 한자는 풀이나 꽃과 관련되며, 나무 목(木)이 부수자인 글자는 나무와 연관되어 있다. 마음 심(心)이 부수자인 한자들은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을 나타낸다. 예컨대 마음이 어긋난[非] 상태가 슬플 비(悲)이고, 마음 속 생각이 없어진[亡] 상황이 잊을 망(忘)이다. 또 비 우(雨)자를 부수로 하는 한자는 날씨와 관련되며 병질 엄()을 부수로 하는 글자는 신체의 질병을 나타낸다. 이처럼 부수를 통해 한자를 가르쳐주면 아이들은 저절로 그 뜻을 짐작할 수 있게 되고, 한자를 정복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제 조카의 질문에 답을 해주겠다. 들을 문(聞)은 문 문(門)이 소리(음)의 역할을 맡았고 귀 이(耳)가 '듣다'는 뜻을 맡았다. 따라서 부수자는 귀 이(耳)이다. 그런데 문설주 각(閣)은 반대로 각(各)이 소리의 역할을 했고, 문(門)이 뜻을 나타냈다. 그러므로 문(門)이 부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박수밀 한국언어문화학회 연구이사·한양대 국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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