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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외국인이 불편한 나라, 누가 투자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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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살기가 너무 불편하다고 한다. 국내 사정에 어둡다 보니 푸대접을 당하고, 바가지를 쓰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소비자보호원이 3개월 이상 국내에 거주한 외국인(불법체류자 제외)에게 물어본 결과 물건 등을 구입하면서 불만스럽거나 피해를 본 외국인이 41%에 달했다. 이런 피해를 보고도 외국인의 55%는 '그냥 포기한다'고 답했다. 월세를 내국인보다 비싸게 내고, 심지어 2년치를 선불로 내는 외국인도 있다. 외국어 안내문이 부족해 헤매기 일쑤고, 병원에 가면 말이 잘 안 통해 의료사고를 걱정한다.

직장.유학.이민 등으로 3개월 이상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53만여 명에 달한다. 여기에 관광.사업 목적의 단기체류자와 불법체류자를 합치면 훨씬 많은 외국인이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다. 이들이 불신과 증오의 감정을 갖고 모국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동포.기업인.유학생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는 제 발등을 찍는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물가가 비싼 데다 언어 소통이 어렵고, 외국인학교 등 제반 시설이 많이 부족해 외국인이 오기를 꺼린다고 한다. 푸대접에 불이익까지 당하면 들어와 있는 외국인마저 떠날 판이다. 동북아의 허브(중심지)로 육성하려면 외국인이 살기 좋은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복잡한 규제와 고질적 관료주의를 타파하는 것만큼이나 다급한 문제다.

정부는 2003년 '외국인 생활환경 개선 5개년 계획'을 수립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다. 일본은 외국어 응대가 가능한 병원 등을 담은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동남아에서는 공무원이 외국인에게 저렴한 전화를 신청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정부는 외국어로 된 생활 정보를 제공하고, 외국인 피해 구제 창구를 만드는 등 사회 시스템을 갖추기를 바란다. 국민도 우리끼리 살 수 없는 세상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외국인을 봉으로 알고, 바가지나 씌운다면 국제 외톨이로 전락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