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은뒤 문제의식 가져봤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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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 논술 바로 이해하기

한 차례 광풍이 학생들을 휩쓸고 지나간 듯하다. 지난 몇 달간 통합교과형 논술의 정체를 둘러싸고 무수한 추측과 억측들이 난무했다. 어떤 이는 논술이 명문대 합격의 지름길인 듯 과장했고, 또 다른 이는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해도 논술시험을 잘 치를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렇지만 논술의 현실적 위상은 두 주장의 중간 어디쯤 있지 않을까 싶다. 논술만으로 명문대를 간다는 주장은 생활기록부와 수능의 중요성을 무시한 것이고, 다른 주장은 교과서의 현실적 한계를 애써 부인하고 있다.

교과서는 논술의 보물창고이자 가장 훌륭한 논술 교재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논술 기출 문제들을 분석해봐도 그렇다. 대부분의 주제가 고교 교과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교과 밖 영역에서 출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과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과 시사적 영역들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술시험 출제 교수들도 고교 교과서들을 반드시 연구하고 분석한다.
그런데 교과서의 설명 방식이 논술에서도 반드시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윤리 교과서 등을 보면 모든 갈등 이슈를 절충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둘 다 문제가 있다거나 둘 다 긍정하려고 하거나 조화를 강조한다. 학생들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절충적으로 결론을 맺곤 한다. 그렇지만 채점교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독창적인 시각이 보이지 않는 글은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교과서는 논술시험용으로 만들어진 교재가 아니다. 학교 교육은 보통 교육이기 때문에 국민으로서 필요한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이 설정된다.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을 향상하며,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교과서 내용 역시 이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기초로 논술을 준비해야 하지만 교과서적 논리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논술의 기초 다지기

통합교과형 논술은 별다른 공부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들 한다. 그렇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족집게 식 정답'이 없다는 것이지 내신이나 수능을 준비하는 식으로 공부해도 논술시험을 잘 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특히 단순 암기식이나 핵심정리 식의 공부 방법은 피해야 한다.

지금까지 고교의 교육과정은 개별적 교과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그런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개별교과의 지식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렵게 됐다. 상황에 맞게 지식을 변형하고 조합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방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은 내신이나 수능식의 공부 방법으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개별 교과의 시각을 넘어서는 통합적인 사고능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친 훈련과 고민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논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장을 요약하는 능력, 즉 요지를 파악해 하여 약술하는 능력부터 키워야 한다. 이것은 공부를 잘하기 위한 일반적인 자질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짧은 글들을 읽고 요약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 후 차츰 긴 글로 넓혀나간다.

요약이나 자기 의견을 쓸 때도 내용을 소화해서 자기만의 표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써야 한다. 채점 교수들은 전문가적 수준의 글을 원하는 게 아니다. 학생 본인의 생각을 중시하고 그것을 듣고 싶어한다.

# 학년별 논술 준비 방법

고 1, 2 학생들은 당장 글쓰기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2008학년도부터 시행되는 통합교과형 논술의 글쓰기 방식은 기존의 논술시험과는 크게 다르다. 지금까지는 대개 한 주제를 서론·본론·결론의 형식에 맞춰 1200~2500자를 쓰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통합교과형 논술에서는 다양한 요구사항에 맞게 나눠 쓴다. 짧게는 200자에서 1000자까지 쓴다. 따라서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지 끙끙거리다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논술은 무엇으로 공부하느냐보다 어떻게 공부하느냐가 더 중요한 영역이다. 고교 1, 2학년 수준에서는 교과서로도 기본 훈련이 가능하다. 도덕이나 사회·과학 탐구 영역에 있는 탐구 주제에 대해 자기 견해를 정리하는 훈련을 반복한다면 좋은 논술문을 쓸 수 있다. 또한 일상적인 현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한 뒤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만화책을 읽어도 생각을 하고 읽으라는 것이다.

고전을 읽는 것도 많은 논술 전문가가 추천하는 방법이다. 풍부한 독서는 중요하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이다. 대부분의 학생은 책을 많이 읽지도 않지만, 책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정리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대부분'읽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하지만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정리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한 시간에 한 페이지를 읽는 일이 있더라도 의문이 들거나 생각이 다른 사항들은 항상 메모장에 적어놓는다.

고교 1학년 수준에서는 문·이과에 관계없이 폭넓은 지식이 중요하다. 따라서 교과서를 많은 지식이 담긴 교양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교과서 수준의 지식만 갖춰도 사회에서 교양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말이다.

2학년의 경우는 사회·과학 탐구 영역을 잘 선택해야 한다. 상위권 대학에 지망하려 할수록 논술과의 연관성을 심도 있게 고려해야 한다. 탐구 영역은 논술의 중요한 배경지식이다. 자칫하면 내신 및 수능 준비와 논술준비를 따로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내신→수능→논술로 이어지는 심화학습 과정의 고리들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탐구영역을 잘 선택하려면 대학의 기출문제들을 꼼꼼히 읽어보거나 선배들의 조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학입시에서 논술의 위상이 크게 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변화 이상으로 논술에 대해 과도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결국 고교 교과과정 내에 있는 것이다. 학교 교육과정에 충실한 학생이라면 반드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김병년 프로메테우스 통합논술 강사(02-592-0589, www.u-c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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