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교향악단 흔드는 前수석지휘자의 복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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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모스크바는 지금 '오케스트라 전쟁'중이다.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RNO.음악감독 미하일 플레트네프)와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오브 러시아(NPOR.음악감독 알렉산더 스피바코프)가 자존심을 내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전쟁'의 발단은 스피바코프가 2002년 봄 계약 만료 1년을 남겨 둔 시점에서 RNO의 음악감독 자리에서 쫓겨난 사건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지휘자인 스피바코프는 1999년 RNO 창단의 주역인 플레트노프가 계관(桂冠)지휘자 칭호를 받으면서 일선에서 물러난 후 RNO의 사령탑을 맡아왔으나 단원들이나 음반사의 호감을 사지 못해 재계약을 따내는 데 실패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스피바코프는 지난해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 미하일 슈비드코이 러시아 문화부 장관의 도움으로 '러시아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RNPO)를 창단하기에 이르렀다. 2천만달러(약 2백40억원)라는 막대한 정부 예산도 따냈다.

스피바코프는 러시아 최고의 연봉(평균 1만8천달러.약 2천2백만원)을 제시, 무려 31명의 RNO 단원을 스카우트했다. RNO 측에선 RNPO가 '러시아 내셔널'이라는 이름을 베낀 것은 '상표권 침해'라고 맞섰고 RNPO는 결국 현재의 NPOR로 간판을 바꿨다.

하지만 스피바코프의 복수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가 지난해 9월 개관한 모스크바 최고의 콘서트홀인 '모스크바 국제음악당'의 초대 극장장으로 임명된 후 RNO가 1년 전에 신청해 놓은 대관을 전격 취소한 것.

모스크바시가 총공사비 2억달러(약 2천4백억원)를 들여 준공한 국제음악당은 1901년 개관한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볼쇼이홀 이후 1백년 만에 모스크바에 들어선 심포니 전용홀이다. 현지 평론가들은 문화부 장관이 특정 지휘자와 친하다는 이유로 또 하나의'국립 교향악단'을 창단하는 것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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