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 대통령을 少數로 몰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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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언론은 권력에 대한 비판 또는 견제 기능을 지닌다고 흔히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권력이란 정치권력, 보다 정확히는 대통령 권력을 뜻한다. 대통령 권력의 비판강도에 따라 언론의 등수가 매겨지기도 한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얼마나 은유적 방식을 동원해 대통령 권력을 긁느냐에 관심이 모아졌고 양金시대부터는 대통령 권력에 맞서 어떻게 YS와 DJ를 희화화하고 비판할 수 있느냐에 따라 언론, 특히 신문의 자리매김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 언론의 막가파式 비판 탈피할 때

지금의 대통령 권력은 어떠한가. 대통령 지지도는 바닥을 쳤고 대통령 스스로 못해먹겠다고 대통령직을 건 재신임을 묻자는 상황에 와 있다. 대통령 권력의 지지기반이었던 국정원.검찰 권력을 대통령 스스로 포기 선언했다. 여기에 뚜렷한 지역기반도 없다. 지지하는 국회 의원수도 적다. 정신적 여권이라는 미니 정당이 있다지만 그들을 움직일 공천권도 없다. 대통령이 무소불위로 휘둘러왔던 그 좋던 절대 권력이 자의든 타의든 왕창 줄어들었다. 오죽하면 대선 후보시절 그를 후원했다는 한 지방 기업인이 대통령 인사를 비판하고 퇴임 후 생활보장까지 장담하는, 대통령 권력을 능멸할 정도의 난센스가 벌어지겠는가.

대통령 권력의 위상이 바뀐 이상 비판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대통령 권력을 막가파식으로 몰아갔던 종래 방식에서 탈피할 때가 됐다고 본다. 대통령 권력을 막가파식으로 비판할 때 대통령은 마이너리티로 몰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을 중심세력 아닌 주변세력으로, 다수세력 아닌 소수세력으로 몰아갈 때 가공할 사태가 예상된다. 한.미동맹보다는 민족공조가 대미.대북 정책의 기조가 될 수 있고 반미 친북쪽으로 기울 수 있다. 시장경제사회에서 노조 일변도면 소수파다. 성장보다 분배 일변도면 소수파다. 개발보다는 환경이 소수파다. 교육경쟁력보다는 교육평등화가 그쪽 주장이다. 대통령을 이런 소수파 코너로 몰아도 좋은가. 盧대통령의 지지기반을 굳이 따진다면 다분히 이런 소수파에 속한다. 설령 소수파 지지기반을 가졌다 해도 대통령이 된 이상 소수 아닌 다수 국민을, 이념보다는 국익을 우선하는 게 최고지도자의 선택이다.

우리 사회에선 대통령 권력만 있는게 아니다. 야당권력, 언론권력, 노동권력, 농민권력, 교육권력, 여성권력, 환경권력, 시민권력 등 부지기수다. 조중동 권력, 민주노총 권력, 전교조 권력, 여성단체 권력, 시민단체 권력, 부안 원전센터 반대 권력…. 대통령 권력이 부안군 한 지역에 스며들지 못할 정도다. 국가 기간시설 추진이 한 시민단체의 반대로 오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불법시위 엄단이라는 대통령 지시가 나온 다음날 경찰차에 불을 지르고 부상당한 경찰이 탄 앰뷸런스를 습격하는 폭력시위가 버젓이 발생하는 나라다.

대통령의 막가파 절대권력도 결코 용인할 수 없지만 언론의 무조건 비판도 자제돼야 한다. 시민권력, 노조권력, 여성권력 등 이른바 선의의 압력단체들도 스스로의 권력을 자제하고 국가 장래를 걱정하는 선의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예를 들자. 북한의 처지가 왜 이처럼 곤궁하게 되었는가. 식량사정 못지 않게 위급한 게 전력난이다. 우리가 그나마 에너지난에서 해결된 게 원자력발전 덕이다. 실제로 전력의 39%를 원자력발전에 의존하고 있고 18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발전소가 가동하는 한 폐기장을 더 지어야 한다. 당장 짓자는 것도 아니고 지표조사를 해야 할 시점에서 부안사태가 일어났다.

*** 압력단체들도 책임 공유해야

대통령 권력도 여기선 아무런 힘을 못썼다. 가장 많은 전력을 쓰는 언론권력이 방송사다. 수신료까지 한국전력에서 통합 징수해주는 공영방송이 이 문제를 푸는 데 앞장섰어야 하지 않은가. 기업이 전력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노조권력이 나서서 주민을 설득하고 그 위험도를 줄이는 감시와 견제 체제를 자청해야 될 것 아닌가. 그러나 어떤 단체도 앞장서기를 꺼리며 오로지 핵은 안 된다고 합창하고 있을 뿐이다.

불가에선 공업중생(共業衆生)이라 했다. 이젠 대통령 권력, 언론권력, 노조권력, 환경권력, 야당권력이 공업.협업 관계로 나가야 나라가 산다. 권력이 있는 만큼 책임도 공유해야 한다.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전가하던 시대는 지났다. 대통령을 소수로 몰기보다는 넓고 밝은 광장으로 나와 다수의 지지를 받도록 언론이, 노조가, 시민단체가 나서야 한다.

권영빈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