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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식탁' 언제까지…] 下. 소비자 위생감시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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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식품 안전을 정부에만 맡길 수 있을까. 정답은 "아니올시다"다. 단속의 끈이 느슨해지고 관리 체계도 허술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선구안이 절실하다. 소비자들의 높은 위생 의식으로 식품 범죄가 더는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번 문제된 회사의 제품은 아예 외면하는 등 지속적으로 소비자운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말 TV 홈쇼핑에서 한우 불고기세트를 구입한 최강일(30.서울 신정동)씨는 고기에서 역한 냄새가 나고 육질이 질긴 사실을 발견했다. 홈쇼핑 측에 항의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崔씨는 24만원을 들여 축산물기술연구소에 성분 검사를 의뢰했다. 젖소 성분이 검출되자 한 소비자단체에 제보했다.

소비자 단체가 증거를 들이대자 홈쇼핑은 9월 3일 사과방송을 했고, 그 제품을 구입한 4천3백여명이 환불이나 보상을 받았다. 소비자가 불량 식품을 퇴출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대형 로펌의 식품 전문 변호사 S씨는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해서 불량 식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소비자들이 나서 시중의 식품을 수거해 조사.발표하는 등의 감시활동을 강화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의 힘=1999년 벨기에에선 폐유가 섞인 사료를 먹은 돼지고기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돼 자국 내에서 판매가 금지됐다.

이 정보를 입수한 국내 소비자단체들이 나섰다. 벨기에에서 들여온 돼지고기 창고에 들이닥쳤다. 국내 수입 업자들이 수입 일자를 바꿔 다이옥신 돼지고기 파동 이후에 수입한 것처럼 유통기간을 조작한 사실을 발견했고, 농림부가 대대적으로 단속한 결과 3천여t을 폐기했다.

학교 급식에서 식중독 사고가 계속되자 학부모들이 나선 것도 소비자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 시내 중학교로는 처음으로 직영 급식을 시작한 양천구 목동 월촌중학교의 경우 급식 부실을 우려한 학부모들이 1년6개월간 학교 측과 싸워 직영 급식을 관철했다.

서울 관악구 모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연두부 맛이 이상하다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경북 칠곡의 두부공장을 찾아가 품질 검사를 벌이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소비자들이 불량 식품을 만든 회사의 문을 닫게 한 적도 있다. 지난해 2월 햄.소시지 시장 점유율 86%를 자랑하던 유키지루시(雪印)식품이 수입 쇠고기를 일본산으로 속인 사실이 내부자 고발에 의해 드러났다. 광우병 파동 때문에 국가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서다.

이 회사의 도덕성에 실망한 전국의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이 회사 제품의 불매운동을 벌였다. 당시 일본에 거주했던 성미현(45)씨는 "주부들이 유키지루시 상표를 단 소시지나 우유가 진열된 상점에 항의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모회사인 유키지루시 유업까지 위기를 느끼자 결국 2백40억엔의 손실을 감수하고 식품회사를 퇴출시켰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90년대 이후 국내에서 소비자에 의한 불량 식품 퇴출 운동이 간간이 있었지만 아직은 초보단계에 불과하다. 2001년에는 사료용 옥수수를 수입해 전분.식용유 등의 원료로 가공.판매한 ㈜대상 등 4개 대기업이 적발됐다.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소시모)은 즉각 불매운동을 시작했지만 소비자의 호응이 작아 유야무야됐다.

최근 급식업체가 학교 측에 금품을 제공했다고 폭로한 서울 ○고등학교 2학년 金모양은 "엄마가 '문제가 됐으니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그냥 급식을 먹어라'고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운동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소비자 권리에 대해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중.고교 사회 과목에서는 절약이나 저축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유통기한이나 성분 확인 등의 기초적인 소비자 교육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서울여대 송보경 교수는 "불량 식품을 보면 관계기관에 신고하도록 하는 등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소비자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단체가 덜 조직화돼 있는 점도 문제다. 재정경제부에 등록된 소비자단체는 모두 11개. 상근 직원이 10~25명에 불과하다.

검사시설을 갖춘 데는 없다. 예산도 30% 정도만 회비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정부.지자체가 발주하는 프로젝트를 맡아 충당한다.

◇특별취재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건강팀), 신성식.이지영.권근영 기자(정책기획부)<ssshi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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