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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을 잘 하기 위한 비결

중앙일보

입력

회사 생활을 잘 하기 위한 비결

# 1.

어느 악마가 사막을 지나고 있었다. 마침 한 떼의 악마들이 거룩한 수도자 한 사람을 시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예쁜 여자로 변해 육체적인 유혹을 시도하기도 했다. 겁을 줘 공포심을 일으키기도 했다. 모든 방법은 헛수고였다. 수도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악마가 동료 악마 무리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방법은 유치하다. 내게도 기회를 다오." 그리고 악마는 수도자에게 다가가서 귓속에다 한 마디를 던졌다.

"당신은 당신 동생이 주교가 되었다는 사실을 들었소?" 순간 평온하던 수도자의 얼굴에 질투심이 스쳤다.

이 이야기는 시기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우화다. 질투는 어떤 증오심보다도 견고한 법이다. 인간은 선한 존재이면서도 한편으론 폭력성과 잔인함, 그리고 시기심을 함께 가졌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허영심이 강하고, 타인의 성공을 질투하기 쉬우며, 자신의 이익 추구에 대해서는 무한정한 탐욕을 지닌 자다."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너무하다구? 이 글에선 인간이 가진 선한 면은 일단 논외로 하자. 착한 마음이 일으키는 문제는 별로 없으니까.

대신 인간의 나쁜 측면, 특히 질투심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간사회에서 질투와 시기는 대부분 트러블의 원인이 된다. 사람은 다양한 인간관계라는 벗어날 수 없는 거미줄로 얽여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나의 실망보다는 남의 희망에 대해 더 괴로워 한다.

# 2.

예전에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경영자 생활을 하신 한 어르신께 들은 이야기다. "자넨 회사에서 일만 열심히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사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라네. 회사생활에서는 업무가 3할이고, 정치가 7할이네. 인간관계를 치열하게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라네."

조금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이야 기업이 매우 투명해졌지만, 80년대만 해도 해도 지금보다 훨씬 부패했었지. 당시엔 여러가지 방법으로 개인 주머니를 채우는 임원들도 제법 있었어. 내가 어느 회사에 부임했을때, 동료 임원으로부터 견제를 벗어나는 데 1년 이상 걸렸지."

그 분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들이 해 먹던 것을 내가 뺏어가지 않을까 경계하더군. 나중에 내가 부패하지 않은 걸 알고 나선, 자기들을 고발하지 않을까 의심했어. 결국 그러지 않는단 걸 확신하고서야 비로서 마음을 열고 동료로 받아들이더라구. 부패를 척결할 수 있도록 모든 업무를 완전히 장악하기 전까지 철저히 나를 숨겼지."

부정적이고 다소 우울한 이야기지만, 이 어르신의 말씀엔 무시못할 현실적 지혜가 담겨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직장생활에서 맡겨진 일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받는 월급엔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고, 이에 대응해 나가는 마음 고생에 대한 '품삯'(?)도 엄연히 포함돼 있다.

실력만으로 일이 잘 되는 건 아니다. 작게는 팀 동료들부터 넓게는 다양한 업무협력 관계자들이나 이런저런 이해관계자들의 마음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무한경쟁에서 이기려면 시기와 질투를 빗겨 나가는 능력은 필수다.

# 3.

영화 '묵공'의 배경은 중국의 전국시대다. 조나라 10만 대군과 명장 항엄중의 침략아래 놓인 양성을 돕기 위해 묵가의 일원인 혁리가 홀홀단신으로 찾아온다. 묵가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약소국을 돕는 사상가 집단이다.

처음 양성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던 혁리는 뛰어난 지략으로 기적처럼 강력한 조나라 군대의 공격을 막아낸다. 혁리는 신분보다는 능력위주로 인재를 발탁하고, 전투에선 누구보다 용감하게 앞장서며, 검소한 생활속에서 사람들을 따뜻하게 격려한다. 누가봐도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이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발생한다. 소학에 이르길, "사람들은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고, 나에게 아첨하는 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권력있는 자일수록 그런 성향이 더 강하다. 성 사람의 신망을 한 몸에 받는 혁리를 양성의 왕이 좋아할 리 없다.

혁리가 성 사람들의 신망을 얻을 수록, 왕의 혁리에 대한 의심은 커져 갔다. 마침 조나라 장군이 군대를 물리는 척 하는 계책을 쓰자, 침략의 위협에서 벗어났다고 안심한 왕은 역모의 혐의를 씌워 혁리를 죽이려 한다. '토사구팽'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혁리를 따르던 사람들까지 모두 죽인다.

혁리는 공성에 맞서 수성하는 실력은 뛰어났으나 정치에선 초보였다. 아니 사람들을 구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을 뿐, 정치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수성을 위한 군사전략만으로는 성안 백성을 온전히 구해내지 못했다. 높은 이상만으론, 자신을 엄격히 다스리는 절제심으로는 부족했다.

홀홀 단신인 그에겐 어차피 권력자의 조력이 필요했다. 그가 사람들에게 칭찬받을수록 자신을 더 낮추고, 왕에게 공이 돌아가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성이 불타지 않도록 거센 공격을 막는 준비만큼이나, 권력자들을 달래고 내부 분열을 단속하는 데 힘을 쏟았어야 했다.

그래서 리더는 철학과 이상이 있어야 하나, 성인군자여선 안 된다. 그 높은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여우같은 현실론자가 되어야 한다. 고매한 공자이기보다는 현실적인 마키아벨리가 돼야 한다. 정말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윗사람보다 더 인정받으려 해선 안 된다. 더 인정받는 것은 겉으로는 승리인 것처럼 보이나, 결국 파멸의 끝을 보게 된다. 태양의 빛을 능가하지 않으면서도 늘 빛나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지혜를 배워라." 철학자 그라시안이 남긴 교훈이다. 정말 현실적인 지혜가 아닐 수 없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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