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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신조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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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터넷 자체에서 생기고 퍼진 말들은 더욱 많다. 물론 공식어보다는 은어나 유행어가 다수다. '얼짱''쌩얼''된장녀'에서 '낚시질(제목에 유혹당하는 것)''훈남(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남자)''안습(안구에 습기차다, 눈물나다)''완소(완전 소중)' 등 다양하다. 언어의 품격을 깬다는 비판도 있지만 가볍게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조어를 아는 게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증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조어는 사회상을 반영한다. 장기 불황과 함께 취업난 관련 신조어 목록이 두툼해졌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사오정(45세면 정년)'을 지나 '이구백(20대 90%가 백수)''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까지 나왔다.

신조어는 기업 마케팅의 산물이기도 하다. 특히 'OO족'이라는 신조어는 새로운 소비행태와 맞물려 등장한다. 기업의 마케팅 보고서가 출처일 때도 많다. 외모 가꾸기에 적극적인 중년남녀를 뜻하는 '노무족(No More Uncle)'이나 '나오미족(Not Old Image)'도 이들의 지갑을 겨냥하면서 새삼 등장한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신조어가 쏟아지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급변한다는 증거다. 사회의 속도에 맞춰 말의 생산속도가 빨라진다는 뜻이다. 눈여겨 볼 부분은 조어의 주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미디어나 지식사회가 주체였다면, 최근에는 인터넷의 약진이 눈에 띈다. 말과 개념을 만드는 권력행위에 익명의 네티즌들이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언어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급하게 생산된 말이니 단명의 숙명을 피할 길 없다. "신조어는 삶과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문이거나, 그 문을 열거나 닫는 열쇠"('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라는 말이 무색하게, 현대 사회 언어의 운명은 명멸하는 반짝스타의 그것과 비슷해지는 것이 아닐까. 최근에는 정치권마저 각종 조어의 주체로 뛰어들었다. 실체 없는 부박한 말들이 도처에 넘쳐난다. 말의 무거움이 그리워지는 때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