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입양아 고국서「뿌리」익히기 구슬땀-YWCA 여름학교 프로그램에 유럽입양 청소년 23명 초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유럽지역에 입양된 한국 어린이들이 건강한 청소년으로 자라 모국을 방문, 무더위도 잊은 채 「뿌리 알기」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서울YWCA가 작년에 이어 마련한 91해외 입양 청소년 여름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24명의 청소년들이 바로 그들. 벨기에·핀란드·독일·네덜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 6개국에서 온 16∼27세에 이르는 남자 10명, 여자 14명 등 24명이 고국을 떠난 이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이다.
이들 가운데 노르웨이에서 온 욘 아네 바케(24)를 제외한 23명이 양부모를 찾아 입양됐었다. 지난 17일 시작, 오는 7월5일까지 계속되는 이 프로그램은 이들의 뿌리 알기를 돕기 위해 한국어 및 한국역사 배우기, 다도·한복 입는 법·탈춤·서예 등 전통문화 익히기 등으로 짜여 있다. 조국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땅굴 견학·국회의사당 방문·산업시찰 등의 프로그램도 있다. 나아가 자신들의 해외입양을 주선했던 입양기관을 찾아 개인사를 들춰볼 수 있게까지 하고 있다.
서울Y 대학생부 홍안나 간사는 『작년 1차 프로그램과는 달리 20세가 넘은 청년층이 14명이나 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하고 『연령차가 커서 이해 도나 관심사가서로 다르지만 모두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 활발히 의견을 나누면서 서로의 시각차를 좁혀가고 있다』고 들려줬다.
한 예로 판문점·땅굴견학 등을 마친 후 소감을 묻는 자원봉사자들에게 l0대의 청소년들이『나이스(좋다)』라고 말하자 20대 청년들이『그것은「나이스」가 아니라「인터레스팅」 (관심거리)』이라고 정정해주며 분단된 조국의 안타까운 현실에 관해 주의를 환기시키자 모두 숙연해졌다는 것이다.
27일로 8시간에 걸친 한국어 교육을 끝마친 강사 김재욱씨(26·한국외국어대 대학원 국어학 1학기)는『24명 가운데 우리말을 알아듣는 이가 1명, 조금 아는 이가 3명에 불과했다』고 말하고『한국어 발음상 r과 1의 차이가 없고 영어에는 복자음의 발음이 없어 이를 ㅋ·ㅌ·ㅍ과 구별하기 어려워 힘들어하긴 했지만 한글을 아는 이건 모르는 이건 시종일관 진지하게 수업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프로그램 참가자 가운데 그간 친부모를 찾은 이들도 6명. 특히 네덜란드에 나란히 입양됐던 요엘 메네가(20)·유디스 메네가(19) 남매의 경우 10년 전 사위가 죽자 딸의 재혼을 위해 친정어머니가 딸 몰래 입양기관에 이들을 보냈으나 이들 남매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이들을 그리며 혼자 살아오고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가난한 홀아버지가 두 아들을 키우기가 벅차 입양돼야했던 제론 미나드(18·네덜란드)는 『장남만은 갈 길러 훗날 네덜란드로 유학을 보내 형제가 만나도록 하겠다』고 했던 당시 아버지의 꿈보다 오히려 더 잘 자라 상봉한 가족들을 흐뭇하게 하기도 했다.
이들이 한국에 대해 받은 공통된 인상은 사람·차가 너무 많고 모두들 너무 바쁘다는 것. 타림 와니 그뢰테케(24·독일)는 『한국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느라고 자신도 음식을 너무 빨리 먹어 위장장애까지 겪었다』며 웃었다.
이들이 한국인의 장점으로 꼽은 것은 정이 많다는 것. 반면 거리에서 무질서하게 통행하며 툭툭 치며 지나가는 것은 나쁜 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편 유럽지역 입양아들은 네덜란드의 한국 입양아 모임인 아리랑회를 비롯, 최근 나라마다 자발적인 한국인 입양 협회를 만들어 서로 여행하면서 유대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은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