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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주도한 배금자 변호사 "미 담배회사도 중독 인정했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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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KT&G와 국가를 상대로 낸 국내 최초의 ‘담배소송’에서 패소한 폐암 환자와 가족 및 변호인이 서울지방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쨰가 이번 소송을 이끌어 온 배금자 변호사. [사진=안성식 기자]

7년 이상 국가와 KT&G를 상대로 한 담배소송을 이끌어 왔던 배금자(46) 변호사. 그는 25일 오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조경란 부장판사의 선고에 긴 한숨만 내쉬었다. 배 변호사는 "실망스럽고 참담하다. 우리 사법권이 이토록 국민의 건강권을 외면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판결은 어떻게 평가하나.

"납득할 수 없다. 대형 담배회사인 미국의 필립모리스도 인정하는 니코틴 중독성을 왜 인정하지 않나. 수많은 전문가의 증거를 배척한 판결이다. 승복할 수 없다. 항소하겠다."

-재판부는 담배 제조사의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1960년대 흡연을 시작해 89년에 폐암 선고를 받으신 분은 30년간 어떤 경고도 못 받았다. 그런데도 제조사가 경고 의무를 충실히 했다는 것인가."

-담배 제조사의 판매와 폐암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데.

"흡연이 폐암의 주된 원인임을 인정하면서도 담배 제조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 오랜 잠복기를 거쳐 유해물질이 축적돼 발병한 피해자들이 유해물 유포.판매자를 상대로 내는 '공해소송'에서도 승소할 길이 없다."

배 변호사는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석사 논문 준비를 하던 98년 담배소송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미국에서는 담배소송을 제기한 주정부와 담배회사 간의 협상 과정이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그는 "'미국 담배소송 이론의 한국에의 적용'이라는 논문을 위해 관련 자료를 모으면서 담배의 해악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그때 한국에서 담배소송을 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6개월간 흡연 때문에 폐암 등 질병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를 모았다. 이들의 생활환경 등을 조사해 99년 말 소송을 냈다.

그는 7년 동안 각각 수백 쪽에 달하는 증거자료를 100차례 이상 재판부에 제출했다. 흡연자의 고교시절 건강 자료, 미국 담배회사의 악의적인 영업 및 법적 전략을 고발하는 문건, 폐암과 흡연의 인과관계가 상당하다는 국내외 연구자료 등이다. 또 KT&G 부설연구소의 담배 유해성에 관한 자료를 공개해 달라는 소송을 위해 2년여간 수십 차례 서울과 대전을 오갔다. 30여 차례 진행된 재판에 직접 참여하면서 서울대 의대가 내놓은 감정서의 공정성을 두고 날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무료 변론을 맡고 있는 배 변호사는 "몇 년이 걸리든 끝까지 소송을 맡을 것"이라며 "논리적으로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글=백일현 기자<keysm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 award)=민사재판에서 피고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제도. 우리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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