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교육을 두 번 죽이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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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방석이 엉덩이에 눌려 기절했다. 그래서 인공호흡을 하려니까 그것은 방석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어머니가 말렸다. 지독한 입냄새 때문이라나.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코미디언의 바보연기 장면이다.

며칠 전 어느 언론사로부터 교육 평준화에 관한 좌담 제의를 받았다. 별 전문성도 없는 나 같은 사람까지 나서 한마디 하는 것은 이미 탈진한 교육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 생각돼 사양했다.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입다물고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교육정책을 주무르거나 전문가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교육을 망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에 냉소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다.

수능기술자로 이름난 사람들을 사이비 종교 교주처럼 숭배하고, 창의성을 좀먹는 불량식품인 줄 알면서도 사교육을 살 능력이 있어야 부모 구실을 하고, 대학교수들이 앞장서서 제 자식을 해외로 보내는 세상이다.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신분상승이 가능했던 시절은 가고 돈 있어야 과외해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이쯤 되면 교육이 거의 죽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용하다는 의원들의 처방을 듣다보면 해답은커녕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지도 헷갈린다. 공교육의 평준화와 입시제도의 가변성이 논쟁의 핵심인 것은 알겠지만 무엇을, 왜,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의 차원으로 가면 너무 많은 주장이 교차해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정책을 제대로 논하려면 편익과 비용을 함께 따져야 한다.

또한 정책의 내용 못지않게 이를 집행할 능력도 중요하다. 평준화에 대한 숱한 오해도 따져보면 정책 평가에 대한 그릇된 인식 탓이 크다. 평준화는 규제이기 때문에 획일성에 따르는 비효율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규제의 편익이 비용을 능가하고 다른 대안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가끔 텅빈 거리에서 빨간불에 서 있는 비효율이 있지만 이 때문에 교통신호라는 규제를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같은 제도라도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평준화 조치의 경우 도입 당시에는 중.고등학교 입시 지옥이라도 막자는 인식 덕분에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획일성에 따르는 비효율을 경계하는 연구와 조치가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커진 것이다.

반대로 입시제도의 경우는 규제를 너무 쉽게 완화했기 때문에 문제가 악화됐다. 규제의 생명은 일관성과 투명성이다. 당장 저쪽에서 오는 차가 없다고 빨간불 무시하고 달리는 예외가 확산되면 머지않아 교통신호 체계는 마비될 것이다. 교육제도의 획일성에 대한 비판이 커지니까 다양성 어쩌고 하면서 연례행사처럼 입시제도를 바꿨고 그 결과 지금의 복잡하고 조잡한 형태로 남게 됐다.

결국 교육규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정책수단으로서 냉정하게 평가하고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교육은 망가지고 입시제도는 누더기가 된 것이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워낙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라 각종 제도적 대안에 대한 장단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오히려 모두들 너무 많이 알아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불필요한 거래비용을 줄이는 백년대계를 만들려면 흩어진 구슬을 꿰는 정책의 힘이 필요하다.

수능의 난이도를 조절한다, 특목고를 어디다 만든다, 사설 학원을 단속한다, 학제를 개편한다는 식의 단편적인 정책을 내뱉는 것은 모두 교육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교육개혁은 정권과 이념을 초월하는 차원에서 몇년을 두고 준비해야 한다. 당분간 복잡한 것을 단순화해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를 제외하고는 일관성 해치는 정책변화를 자제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책도구를 손에 쥔 사람들의 양심부터 작동해야 한다. 전문가들도 내 생각 어떻소 하고 나서기보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부터 고민해야 한다. 바보도 자신의 입냄새가 방석을 두 번 죽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똑똑하신 분들이 인공호흡으로 교육제도를 살리려 든대서야 되겠는가.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