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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영화천국] 배우 예명짓기 사연도 많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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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최근 한 영화 잡지 기사에서 전지현의 본명이 왕지현이라는 얘기를 읽었다. 배우들은 대개 예명이 있나.

A :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 호적법에는 개명을 허가하는 몇가지 원칙이 있다. 가령 이름은 멀쩡한데 성을 붙이면 좋지 못한 뜻으로 둔갑하는 경우. '박아라'나 '조지나'등이다. 또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범죄자와 이름이 같아 사회 생활을 하는 데 현저한 불편이 따르는 경우. '신창원''문세광'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범죄자 이름이나 해괴망측한 뜻이어서는 아니더라도 배우들이 이름을 바꾸고 싶어할 때가 있다. 아니,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그들의 속성상 이름은 제1의 고려 사항일지도 모른다. 턱을 깎고 근육을 만들기 이전에 이름부터 다듬는 게 먼저라는 얘기다. 사실 왕지현보다 전지현이 어감상 낫고 김유정보다 예지원이 어딘지 더 '배우스러워'보이는 건 맞다.

바뀐 이름에는 때론 성공을 기원하는 염원이 담기기도 한다. '킬러들의 수다''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정재영의 본명은 정지현이다. 여성적인 어감이어서 바꿨나 싶었더니 "이 이름으로 대성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선배 기주봉의 충고 때문이었단다. 다음달 개봉하는 '실미도'에서 그가 이름값을 착실히 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이미 업계에 자신보다 유명한 동명이인이 있어 개명하는 수도 있다. 성씨까지 같은 이름이란 아이덴티티 확립이 생명인 이 바닥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달마야 놀자''화산고'로 떠 최근 SBS-TV '보야르 원정대'에서도 맹활약을 펼친 바 있는 김수로. 김해 김씨니까 김수로왕에서 따온 것? 그의 본명은 김상중이다. 탤런트 김상중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찾던 중 아는 목사님이 "빼어난(秀) 길(路)을 걷는 배우가 되라"며 지어줬단다.

일부러 작명소를 찾지 않아도 귀에 쏙 들어오는 이름을 지녔다면 이는 훤칠한 키에 터프한 생김새, 혹은 늘씬한 몸매에 하얗고 티없는 피부만큼이나 배우되기 위한 천혜의 조건이다. 문소리.박한별.장나라.배두나…. 죄다 예명이지 싶은데 본명인, 허(!)를 찌르는 이름의 소유자인 이들은 적어도 이름에 한해서만은 타고난 경쟁력을 지녔다 할 만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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